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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 흔드는 노조 리스크] “구조조정 M&A 쏟아질 듯…노조 협상력이 역량”
뉴스종합| 2020-04-06 11:27

“희망퇴직 접수를 어느 요일부터 시작하는 게 효율적인지까지 검토했습니다. 경영, 노무뿐만 아니라 행동심리학까지, 노조와의 협상을 성공시키기 위해 모든 시각에서 고민했죠.”

지난해 상반기, 치열한 입찰 경쟁을 뚫고 A사를 인수해낸 한 사모펀드(PEF)는 고민에 빠졌다.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위해선 사업의 핵심축을 옮겨야 하는데,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보였기 때문이다. 인사(HR) 전문 컨설팅업체로부터 자문을 받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자칫 협상이 틀어지면 인력 감축 시도가 사회적 이슈로 번져 경영 개선이 지연될 수 있었다. 향후 자금 회수(엑시트)가 필수적인 만큼, 노조 이슈에 따른 경영 개선 지연은 펀드에 출자한 기관투자자들을 등 돌리게 할 수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노조와의 협상에 나서기 전, 경영진 자체적으로 결단할 수 있는 것들을 실행해 협상 테이블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기본적인 퇴직금에 더해 기존에 회사에서 누리던 복지 혜택을 어느 수준까지 제공할지 등, 노조 측에 제시할 수 있는 ‘카드’도 준비해 적절한 시기에 제시했다.

결국 노조 내에서 ‘이번 희망퇴직은 잡아야 할 기회’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물론 회사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사업비 절감과 경영 전략 변화로 일으킬 수 있는 ‘플러스 효과’ 2년치면 이를 보전할 수 있을 것으로 경영진은 기대하고 있다.

인수 후 밸류업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필요한 사례는 보다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의 산업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에 코로나바이러스 영향까지 겹쳐, 향후 수 년 자동차나 조선기자재 등 업종에서 구조조정 M&A가 쏟아질 수 있다”며 “특히 이들 업종에 속한 노조가 강성으로 알려져있는 만큼, 노조 리스크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지가 PEF의 주요 역량으로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마무리된 HSG중공업-큐리어스파트너스 컨소시엄의 성동조선해양 인수 건이 이같은 역량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다. 중견 조선업체인 성동조선해양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주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2010년 채권단의 공동관리(워크아웃)에 들어갔고 2018년에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법정관리 이후 세 차례 매각이 무산됐고, 지난해 10월 진행했던 네 번째 시도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투자 제안을 받은 일부 기관투자자들은 성동조선해양 노조가 강성으로 분류되는 금속노조 소속이라는 점 등에 주목, 기업 정상화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큐리어스파트너스는 새 선박을 건조하기보다는 블록 위주로 수주를 확대하는 경영 정상화 방안을 강조했는데, 이를 위한 직무재배치 등 과정에서 노조와의 갈등이 불가피해 보였다.

그러나 이후 성동조선해양 경영진이 무급휴직 중인 550명 등 직원 670여명에 대한 고용 승계 방침을 내걸자, 노조는 큐리어스파트너스의 투자 기간 중 쟁의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확약으로 응했다.

전략적투자자(SI)의 M&A 중에서는 인수 후 8년이 지나서야 모든 통합이 마무리 된 하나은행-외환은행 인수가 참고할 만하다.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을 자회사로 편입한 것은 2012년이지만, 당시 외환은행 노조의 ‘5년간 독립 경영’ 등 요구가 받아들여지면서 은행 간 합병은 이뤄지지 않았다. 수차례 협상과 법원의 개입 등을 거쳐 2015년에야 ‘KEB하나은행’으로 통합됐고, 인사·급여·복지제도가 통합된 것도 지난해 초였다. 하지만 전산 시스템 통합은 2016년 6월에 이미 완료됐다.

M&A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질적 통합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분명히 아쉬운 점”이라면서도 “노조와의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는 부분은 최대한 양보하면서도 전산망 통합 등 실질적 시너지에 필요한 부분은 진행시키는 완급 조절이 향후 대형사 M&A에 참고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최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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