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팀장시각] 재난소득과 계급론
뉴스종합| 2020-04-06 11:37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klassen kampf)’의 역사다. 오랜기간 생산수단의 소유는 계급의 기준이었다. 생산수단을 소유해 일을 하지 않아도 부를 불릴 수 있는 유한계급(leisure class)과, 하루 12시간 자동차 공장에서 노동을 해도 차바퀴 하나 살 수 없는 계급이 공존했다. 수년 전부턴 한국에선 금과 은, 흙 등 ‘수저 계급론’이 위세를 떨쳤다. 코로나19 사태의 정중앙을 통과하면서 또 하나의 ‘계급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모습이다. 바로 ‘재난소득 계급론’이다.

하위 70% 가정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겠다고 밝힌 정부는 지난 3일 대상자 선정 기준을 발표했다. 4인 가구의 지난 3월 건강보험료 납입 액수가 23만원 이하면 100만원을 준다. 구체적인 방법들도 소상히 공개했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배우자의 소득과 주소지가 다른 경우 등 설명 페이지만도 수 페이지에 이른다. 설명은 복잡하고 이해는 어려우니, 집행은 더딜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원금을 주는 이유를 ‘국민의 안전망 보강’이라 했다. 이른바 ‘복지’ 개념이다. 그래서 있는 사람에겐 덜 주고, 없는 사람에겐 더 주는 방식이 나왔다. 코로나 재난은 빈부를 가리지 않고 피해를 줬다. 그런데도 지원금은 일부에게만 지급된다. 대한민국은 이제 잘 사는 3과 못 사는 7, 돈 못 받을 3과 돈 받을 7로 나뉘게 됐다.

보통 빈부격차를 얘기할 때는 상위20%의 인원이 나머지 80%의 성과를 낸다는 ‘파레토 법칙’이 인용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7대 3이다. 어떤 기준이 적용됐을까? 재정부담을 고려한 경제관료들의 ‘셈법’으로 추정된다. 때로 경제관료들은 국민을 경제운용보다는 나라 살림 자체를 더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재난지원금은 경제정책이어야 한다. 국민 모두에게 돈을 주는 것이 옳다. 국제 대응 수준을 보더라도 한국은 한참이나 뒤처진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한국은 재난지원금(9조1000억원)을 포함해 모두 23조9000억원을 코로나19 대응에 집행한다. 지난해 한국 GDP(1914조원) 1.2% 수준이다. 반면 미국은 GDP 대비 6.3%(2조달러)의 자금을 투입기로 했고 독일은 4.4%(7560억유로)의 재정을 투입기로 했다. 특히 EU는 재정준칙(GDP 60%이하) 적용을 일시중단했다. 위기 상황이 심각하니 국가부채를 더 늘려 위기에 대응하라는 취지다. 아직도 ‘국가채무비율 GDP 40%’가 논쟁 중인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는 각 국가에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도록 강제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 전염병 탓에 한미연합훈련이 중단되고, 한국 입국자 수가 월 1만명이 안 되며, 거리는 텅텅비고 해고에 이은 실업난이 곧 들이닥칠 한국의 현실이다. 사상 초유의 일에는 ‘전례없는 상상력’이 필요하고, 그런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이들은 공무원이 아니라 정치인들이다. 국민을 3대 7로 나누는 데 필요한 행정력을 고려하더라도 다주는 것이 맞다. 더 받은 이들에겐 내년에 종합소득세와 연말정산으로 받아내면 될 일이다. 쾌도난마의 용단이 대통령에게 필요하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