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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공포’가 시작됐다
라이프| 2020-05-08 08:18

“디플레는 일종의 ‘만성질환’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경제를 지속적으로 악순환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플레에 대한 우려가 부각되는 경제환경에서는 앞으로 좀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시행될 필요가 있다”(‘디플레 전쟁’에서)

‘무엇이든 지금 당장 시작하라.’

올리비에 블랑샤 MIT명예교수를 비롯,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이 함께 만든 보고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초래한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법’의 부제이다.

이코노미스트 홍춘욱은 저서 ‘디플레 전쟁’(스마트북스)에서 이를 인용, 코로나 19로 경기침체의 깊은 골에서 빠져나오려면 정부는 효과가 검증된 경제정책 뿐만 아니라 당장 돈을 푸는 강력한 금융정책과 재정정책까지 뭐든 빨리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2차, 3차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가 예시한 유럽 싱크탱크 CPER보고서에서 그나마 다행으로 보이는 건, 봉쇄정책을 펴지 않고 확진자 및 접촉자의 격리 및 사회적 거리두기로 전염병을 억제한 경우, 신규 확진자는 더 늘어날 수 있지만 불황의 골은 봉쇄정책을 편 나라보다 불황이 훨씬 덜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작금의 경제상황을 디플레 위험 신호로 해석한다. 지난해 마이너스 소비자물가 상승률로부터 코로나 19상황까지 담아낸 책은 데이터와 해외 수많은 논문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경기침체의 장기화 조짐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코로나19가 디플레 위협의 방아쇠가 됐지만 사실 한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조짐을 보여왔다고 지적한다. 2019년 한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에 그치고 일시적이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여기에 코로나 19 쇼크로 수출이 타격을 겪고 음식, 숙박, 여행, 소매 등 주요 내수 산업의 붕괴로 디플레 위험은 더욱 커졌다는 진단이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게 왜 문제인지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교과서다. 디플레는 장기불황 때문에 일어나는데 제품가격이 계속 떨어지면 기업은 생산성과 혁신이 떨어지고 해고로 이어지며, 소비자는 소비 위축으로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최근 일본의 물가가 싸게 느껴지는 건 그런 이유다.

저자는 코로나19 이전 디플레 위험을 알려주는 신호 세 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2012년 이후 GDP갭이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사실이다. 수요가 생산 능력보다 더 많이 발생하면 경제가 활발해지고 물가가 상승하며, 반대로 수요가 생산 능력보다 부족하면 고용이 줄고 인플레이션 압력도 약화된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코로나19 영향으로 한국의 GDP갭의 마이너스 폭이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다른 요인은 글로벌 경쟁의 압박이 물가를 더욱 억누르는 구조적인 문제다. 경제가 개방될수록 강력한 경쟁자가 대두, 제품가격은 인하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물가압력은 약화된다.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가 실제보다 높게 측정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저자는 아직 본격화하지 않은, 코로나19 이후 더 노골화될 미중무역전쟁이 어떻게 한국의 물가에 영향을 미칠지도 분석한다. 과거 미국의 관세부과에도 중국제품의 대미 수출가격은 오르지 않고 미국의 적자폭은 더 커졌다. 이는 중국의 환율정책과 중국 제품의 생산성 향상 등이 요인으로, 앞으로 미중무역전쟁이 본격화해도 세계적인 인플레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흔히 코로나19 경제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비교하는데, 저자는 두 가지 면에서 둘을 구분한다.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무엇보다 실물경제 위기라는 점이다. 강력한 외부 충격으로 소비와 투자를 줄여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은 만큼 '눈폭풍'이 멈추고 다시 집밖으로 나오면 강한 경기반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은행들의 건정성이 높아진 점이다. 그러나 은행들이 2008년 금융위기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만큼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도 시중에 돈이 잘 돌지 않는 신용경색이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럴 경우 경제 전반의 디플레 압력은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

디플레 징후가 나타날 때는 정책금리를 적극적으로 인하해 디플레 기대심리가 형성되는 걸 막는 게 우선이지만 제로금리수준이라면 재정정책이 답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시장금리가 명목 경제성장률보다 낮을 때에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으며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낮다는 올리비에 블랑샤의 조언을 덧붙였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공적자금을 쏟아 부어 정부 부채가 급격히 늘어났는데도 실질적인 이자 부담은 오히려 준 게 바로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비밀은 바로 금리가 명목 경제성장률보다 낮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돈을 풀어도 경제에 아무 문제가 없을까? 저자는 인플레 위험이 억제돼 장기간 저금리 환경이 펼쳐질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규모 재정지출에 따른 실질적 재정부담은 미미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 책의 특색은 경기전망에 그치지 않고 저자가 금융시장에 오래 몸담아온 경험을 살려 위기의 시대를 돌파하는 재테크를 소개한 데 있다. 즉 저물가,저금리 환경이 지속될 때, 또한 디플레 위험이 현실화될 때엔 어떤 자산에 투자하는 게 좋은지, 부동산시장은 어떻게 될지 조언해준다.

meelee@heraldcorp.com

디플레 전쟁/홍춘욱 지음/스마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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