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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진의 현장에서] 국민연금 전주 이전의 ‘웃픈’ 사연
뉴스종합| 2020-05-26 11:29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던 지난 3월, 전주시는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먼저 시민을 대상으로 재난기본소득 신청을 받았다. 시민 4만125명에게 52만7000원씩, 총 211억4587만5000원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신청부터 지급까지 중앙정부보다 발 빠르게 진행됐고, 전국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취약 계층이 벼랑으로 내몰리기 전 신속하게 지급을 결정한 전주시 결단에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 와중에, 투자업계는 살짝 ‘삐딱한’ 각도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의 눈은 지난 2016년 전주시로 이전한 국민연금에 쏠렸다. 전주에 새 둥지를 틀며 ‘지방세 큰손’으로 떠오른 국민연금이 전주시가 발 빠르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이 낸 지방세가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기여도를 헤아려볼 수는 없지만, 추측은 가능하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말 기준 운용한 국내 주식은 132조원 규모였다. 국내 주식 운용수익률은 12.58%로 꽤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주식시장이 초호황을 이루면서 운용 규모는 전년 대비 3조원가량 늘었고, 수익률도 크게 올랐다. 국민연금이 주식 단기매매를 하는 기관은 아니라 할지라도 거래 또한 활발했다.

국민연금이 주식 매매차익을 실현하면 국세인 양도소득세를 낸다. 일반개인투자자들에게는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하지만 ‘대주주’ 경우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 대주주의 기준은 상장주식인 경우 코스피 보유액 10억원 또는 지분율 1%, 코스닥 보유액 10억원 또는 지분율 2%다. 비상장주식인 경우 시가총액 10억원 또는 지분율 4%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는 대부분 대주주 지위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양도소득세는 대상 기업의 상장 여부나 과세표준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국민연금의 대부분 주식거래에 20~30%의 양도소득세가 부과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지방세는 별도로 양도소득세의 10%로 책정된다. 모두 종합하면 국민연금은 주식매매 차익의 2~3%를 전주시에 납부하는 셈이 된다. 수익의 극히 일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납부 주체가 연 132조원의 주식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이라는 점에서 무시 못할 규모다.

전주시로의 이전은 국민연금에는 이미 트라우마다. 젊고 유능한 운용역들이 넘쳐나야 할 국민연금에서 인재가 떠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만 23명의 운용역이 기금운용본부를 떠났다. 우수한 운용역들이 능력을 발휘해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뼈아픈 손실이다. ‘글로벌 연기금’을 꿈꾸면서 지리적 조건으로 해외 투자전문가들과 교류가 어렵다는 점도 큰 문제다. 투자업계에서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인천공항에 내려 KTX를 타고 택시 잡아 찾아오라 말하기 얼마나 어렵겠냐”고 하소연했다.

재난기본소득을 최초로 지급한 전주시의 결단,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이라는 웃픈 현실이 있기에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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