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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사고 반으로 줄이자] [르포] 구명조끼 입은 갯바위 낚시객 ‘제로’…“연안에서도 착용 정착돼야”
뉴스종합| 2020-06-15 11:17
지난 11일 오후 인천해경 하늘바다파출소의 안성호 경장이 인천 중구 덕교동 잠진도 선착장에서 안전 계도를 하고 있는 모습. 박상현 기자/pooh@heraldcorp.com

[헤럴드경제=박병국·박상현(인천) 기자] 지난 11일 오후 2시께 인천 중구 덕교동 잠진도 선착장 아래 갯바위. 갯바위 웅덩이 곳곳에 미쳐 빠지지 못한 바닷물이 찰랑거린다. 물기로 번들거리는 갯바위 위를 여성들이 조새(굴 채취 도구)를 들고 위태롭게 옮겨다닌다. 50분 후면 물이 들어와 갯바위 중턱까지 차오를 예정이지만 이들은 여전히 굴 채취 삼매경이다.

안전 계도를 위해 갯바위를 찾은 인천해경 하늘바다바출소의 안성호 경장이 “언제 나가실 거냐”고 이들에게 물었다. 굴 채취를 하던 60대 여성 A씨는 “물 들어오기 전에 나갈 거다”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안 경장이 “곧 물이 들어온다. 고립될 위험이 있으니 구명조끼를 하는게 좋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당시 갯바위에는 여성 3명이 굴 채취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

갯바위 위의 선착장. 20명 가까운 사람들이 선착장에 줄지어 있었다. 각각 1~2개의 낚시대를 바다에 드리우며 입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중 구명조끼를 한 사람들은 없었다. 안 경장이 낚시객 최모(63)씨에게 다가가 “물때를 아느냐”고 묻자 “잘 모른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안 경장은 “오늘(11일) 오후 2시50분부터 물이 올라온다. 빠른 속도로 올라와서 아차 하는 순간에 낚시대 잡다가 끌려갈수 있다”고 말했지만, 최씨는 여전히 심드렁했다.

헤럴드경제가 선착장, 갯바위 등을 순찰하는 하늘바다파출소 순찰대 계도 현장을 동행했다. 선착장에서 낚시를 하거나 갯바위에서 해루질(해산물 채취)등을 하는 사람 중에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 보트나 배 위와 달리 구명조끼를 입는 것이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 경장은 “사실 육상에서 구명조끼를 하는 것은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방파제 위에서 하시는 분들이나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분들에게 혹시 위험하니까 구명조끼를 착용하실 수 있으면 하시라고 하는데, 보통 안 갖고 다닌다”고 했다.

선상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해양경찰청의 계도 등으로 선상위 구명조끼 착용의무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실제로 이날 오후 2시40분쯤 해경 구명정이 마리나 선착장 인근에서 발견한 모터보트 탑승자 2명 모두 구명조끼를 하고 있었다. 인천 왕산해수욕장에서 온 모터보트 운전자 박모(64)씨는 불시 검문을 하는 해경에게 “안 죽으려면 구명조끼 해야 된다. 다른 사람이 내 목숨 챙겨주는 거도 아니다”며 “자기 목숨 자기가 챙겨야 하는데 다들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육지 연안은 구명조끼 착용 의무가 없기에 낚시객들에게 더욱 위험하다. 선박사고 사망자수는 최근 3년간 줄었지만 갯바위 등 연안에서 숨지는 사람들은 매년 늘었다. 지난달 10일 오전 10시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당산봉 인근에서 낚시객 2명이 이동 중 실족으로 바다에 빠져 숨졌다. 숨진 50대 남성은 구명조끼를 하지 않았다. 같은 달 4일 부산 영도구 암남동에서는 낚시를 하던 50대 남성이 물에 빠져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이 남성 역시 구명조끼를 하지 않았다. 해경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7년~2019년) 숨진 비선박사고 사망자의 59.2%는 부주의, 9.2% 안전 미준수가 원인이었다. 특히 숨진 사람의 91.8%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

갯바위 등 연안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사망률은 육지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 등에 비해 10배나 높다. 최근 3년간 도로 교통사고는 63만3084건이 발생해 1만1315건이 사망으로 이어졌다. 사망률은 1.7%수준이었다. 하지만 비선박 해양사고는 2178건이 발생해 368건에서 사망 사고가 났다. 사망률은 무려 17%나 됐다.

해경 관계자는 “연안 사망사고는 해안가, 항포구에서 절반 이상이 발생하지만, 최근 방파제에 무단출입해 낚시하다 실족해 사망하는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며 “익수와 추락에 의한 사망사고가 대부분을 차지하나 실족이나 차량 추락 사고도 증가세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명조끼는 바다에 빠졌을 때 일정 체온과 부력을 유지시켜 호흡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구조될 때까지 생명을 보호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라며 “하지만 낚싯배나 레저보트 승선을 제외하고는 연안에서의 구명조끼 착용이 법적 의무는 아니다. 연안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낚시를 할 때에도 구명조끼를 입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해경은 획기적으로 해양사고를 줄이기 위해선 구명조끼 착용 등 국민들의 안전의식 고양과 함께 민관 협업이 특히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바다와 해당 지역 위험 요인에 이해도가 높은 지역 공동체나 단체 등 민·관 협업이 꼭 필요한 분야”라며 “광범위한 바다와 연안의 특성상 정부 주도의 예방과 대응에 한계가 있다. 사고 예방을 위하여 지역공동체와 협업을 통한 연안안전지킴이 도입과 함께 일일 출동 경비함정의 300배에 달하는 민간 선박을 활용한 국민 참여형 수난 구호 체계 확립 등 민·관 협력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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