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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여행①] 똑딱선에 젊은 꿈 싣던 뉴노멀 여행 [함영훈의 멋·맛·쉼]
라이프| 2020-06-16 08:27

[헤럴드경제=함영훈 여행선임기자] 지금 생각해보면, 강원도 산골 소년이든, 제주도 어촌 소녀이든 대한민국 지도를 그리라면 ‘네 곳’은 매우 정확히 그렸다.

그 전엔 훨씬 더 컸다가 20세기 초에야 굴욕적으로 영토획정이 돼 오늘에 이른 호랑이 형세의 우리 지도를 그릴 때, 아이들은 서해 리아스식 해안을 갈지(之)자의 반복으로, 남해를 U자형으로, 부산에서 함북 나진까지 동해안을 꺽쇠 부호 모양으로 적당히 스케치 하는데, ▷서해 중부 길다란 태안반도 ▷동남쪽 호랑이 꼬리 호미곶 ▷동쪽 끝 국토의 막내 독도 ▷백두산과 그 옆 움푹 패인 곳은 정확히 묘사했던 것 같다.

▶‘크게 편안한 곳’= 이 4개의 랜드마크 중 충남 바닷가 서쪽으로 크고 길게 드리워진 태안(泰安)은 ‘크게 편안한 곳’이라는 뜻이다.

선사시대 패총에서부터 21세기형 테마파크까지, 지질-역사 탐험에서 휴양까지, 해맞이에서 석양까지, 수륙 동식물과의 대화에서부터 다양한 먹거리까지, 모두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뷔페식 여행지라 할 만 하다.

서해에서 동해 같은 느낌 까지, 서쪽(태안 동부해안)에서 해가 뜨기까지 하는, 누가 와도 만족하는 거리두기 야외 여행의 팔방미인이다.

서해 중부 태안 안면도 최남단, 운여해수욕장의 일출

관광자원이 많으니, 동서고금 남녀노소 누가 와도 만족할 만한 여러 개가 있다. 안흥성 신진도 등에서 나라를 지켜 국민을 편안케하고, 괭이 갈매기 수천마리가 궁시도에 신도시를 건설할 정도로 절제된 어로와 개발, 동식물 보호를 실천하며, 편히 쉴 곳, 거리두고 트레킹할 곳이 많다는 점에서, ‘클 태’(泰), ‘편안할 안’(安)이라 이름 붙인 듯 하다.

태안 해변 배후습지에 만들어진 천리포 수목원. 척박한 모래땅에 울릉도, 완도, 미국 택사스에 살던 수목들도 스태프들의 50년 노력속에 ‘태안형’으로 살아남앗다.
청산수목원엔 요즘 홍가시나무가 붉은 자태를 뽐낸다. 한 여행자가 인생샷을 위해 창의적인 포즈를 감행하며 순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팔방미인의 면모= 크게 보아 ▷바다-서풍과 사구-배후습지-수목원-휴양림 4단 지질 식생이 연쇄적으로 빚어내는 변화무쌍한 매력 ▷사람만 보면 흥분해 날뛰는 궁시도의 괭이갈매기 ▷질서있게 도열한 해변 방풍림, 운여해수욕장의 솔숲 등 인생샷 촬영지들 ▷국토의 서쪽의 막내 격렬비열도, 신비의 꽃지 노부부섬, 가의도 솔섬, 이조백자가 반쯤 잠긴 옹도, 둥근 자갈 자연방파제로 국내외 선박의 긴급피난처 역할을 했던 문화재 섬 내파수도 등 섬의 정취가 태안 팔방미인 면모의 일부이다.

113년된 등대가 있는 옹도와 기암괴석이 많고 한국 최고마늘을 빚어내는 가의도 사이로 배가 지나가고 있다. 태안과 서울간 교통편이 좋아지면서 똑딱선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여기에 ▷일리-십리-백리-천리포에서 만리포까지 점층법으로 이어지는 ‘만리포사랑’의 똑딱선(보건선, 긴급후송-수송용 선박) 희망 해변 ▷동해 바다 같은 청정 해수를 가진 해수욕장 20여곳 ▷안면도 부교와 부상탑으로 연출되는 신개념 모세의 길 ▷임금의 밥상에 오르는 건강한 육쪽마늘과 농어, 우럭, 꽃게, 송화소금, 감태 등 열거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폐선 한 척이 태안 백사장항 한켠에 정박해 있다. 스러진 선원들의 꿈이 떠올라 묘한 감성에 빠지면서 자꾸 폐선에 손이 간다. 태안은 서해중부의 험한 뱃길 때문에 쉬어가던곳으로 많은 배들이 모였다. 박경원이 ‘만리포사랑’을 부르던 1958년 전후 태안에서 인천을 오가던 보건선인 똑딱선은 도서지역 긴급환자수송용이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 가는 청춘들도 실어날랐다.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실은 이유= 무엇보다, 뜻있는 태안 젊은이들이 대한민국 중심에서 희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똑딱선에 태워 주던 두툼한 인정과 식재료 하나 그냥 상에 내어 놓지 않고 건강하고 맛있게 조리해 내어주는 지혜와 정성, 별주부 마을 등지에서 쏟아내는 놀이와 흥까지, 정·멋·맛·흥을 두루 갖춘 곳이기도 하다.

똑딱선은 보건선이라고 부르던 공공 선박이다. 선박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를 빗대 똑딱선이라고 불렀다. 도서지방 환자를 인천 거쳐 서울로 보내는 배였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서울로 유학가는 학생, 수도권에 좋은 물건 파는 젊은 상인 등도 공짜로 태워줬다고 한다.

방역수칙 잘 지키는 한 여행자가 가의도의 솔섬을 찍고 있다.

충청의 일반적 이미지에 비해 태안은 좀 다르다. ‘충청도 사람’, ‘서해 정서’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서해 중부엔 암초가 많아 안타깝게 침몰한 보물섬도 많고, 태안에서 쉬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이곳은 교류의 한 거점 노릇을 했다.

인천,서울 등지로 똑딱선, 진상품 공납선을 통해 오가고, 피난처로서 외지인들을 받아주며, 제주 해녀를 받아들여 선진 어로를 배운 사람들. 서울 서초구, 경기 수원시, 강원 동해시, 경남 고성군과 자매결연을 맺어 다양한 생활문화를 풍요롭게 키운 사람들이다. 포용력 큰 ‘태안 정서’라는 표현 밖에 쓸 말이 없다.

군수가 마늘 팔러 서울로 갈 무렵, 서울의 북한산 국립공원 직원들이 태안 해안길 새 단장을 도왔다.

태안 궁시도의 괭이갈매기들은 사람이 오면 일제히 환영 활강을 하면서 아우성을 친다. 사람이 그들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암포, 신두리사구, 만리포, 꽃지, 안면도 부교, 고남솔숲 등 많은 국민이 아는 곳도 여전히 멋진 자태를 보이지만, 아직도 드러내 놓지 않던 색다른 매력들이 많다.

음유시인 정태춘이 서해 한복판에서 노래한 대로,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데, 고요히 잡아주는 손 있으니, 그곳으로 떠나보자.(계속)

안면도 부교

※알림: 폐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아 무엇을 싣고가다 침몰 혹은 인양된 배인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태안 전문가의 연락이 왔기에 이를 수정합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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