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현장에서] 부동산 ‘투기적 수요’가 아니라 ‘공포적 수요’다
뉴스종합| 2020-06-25 10:54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지금 안 사면 죽을 때까지 못 사."

얼마 전 집을 산 기자의 절친은 '어떻게 그런 용단(勇斷)을 내리게 됐냐'고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최근 5~6년간 집값이 계속 폭등했는데 사이클 상 고점인 것 같아 두렵지 않느냐,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운데 자산 가격이 버틸 수 있겠냐는 등의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그냥 삼켰다. 친구의 ‘공포’가 충분히 이해됐다. 그저 “잘했다”고만 해줬다.

정부는 얼마전 6.17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며 예의 그래왔던 것처럼 ‘투기적 수요 차단’을 강조했다. 정부가 현재의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누르고 단속하는 식의 ‘적대적’ 대책이 반복되는 이유다. 편법으로 집을 산 이들을 잡아내 국민의 분노를 자극하고, 그 분노의 힘으로 다시 매서운 정책들을 펼칠 힘을 얻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 대책 때마다 ‘투기적 수요’의 근거로 ‘갭투자’를 내세운다. 6.17 대책 발표 때도 1~5월 서울의 갭투자 비중은 52.4%, 강남은 72.7%라고 제시했다. 이 통계에서 말하는 ‘갭투자’는 전세보증금을 끼고 주택을 구입한 경우를 모두 포함한 것이어서 일반적인 ‘갭투자’의 정의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원래 ‘갭투자’는 전세가율이 높던 2010년대 중반에 적은 투자금만 가지고 주택을 구입하던 것을 의미했다. 지금은 전세가율이 낮아져 당시와 같은 형식의 투자는 불가능하다. 정부는 ‘갭투자’의 개념 을 넓혀 ‘갭투기’가 만연하고 있는 것처럼 과장하고 있다.

과연 현재 시장을 ‘투기적 수요’라는 말로 온전히 규정할 수 있을까. 집값 상승이 상당히 진행된 최근의 주택 수요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나도 투기꾼이냐’고 묻는 제목의 청원이 빗발치고 있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

기자의 친구처럼 ‘집값이 언젠간 잡히겠지’하고 몇년을 눈뜨고 기다리다, 어느새 두새배 오른 가격에 뒤늦게 올라타고 있는 이들의 심리는 ‘투기’라기보다는 “더 오르면 어떻게 하지”라는 ‘공포’에 가깝다. 요즘 주식 시장는 이러한 현상을 ‘패닉 바잉’(Panic Buying, 불안함에 따른 매수)이라고 부른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잘못됐다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방안은 전문가들의 견해가 지나치게 양극화돼 있어서 합의를 보기 어렵다. 정부가 문제의 원인을 수요 과잉으로 보고 규제로 방향을 잡는다고 해도 명확하게 틀렸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다만 적어도 ‘부동산 정치’에 있어서만큼 정부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 국민들이 마주하고 있는 공포의 실체를 깨닫고 이해해주기는 커녕 ‘투기적 수요’라고 악마화하고 있다. 6.17 대책 발표로 시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당국자들이 “대책의 약발이 먹히고 있다”고 생각하며 미소 짓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집을 가지지 못한, 앞으로 더욱 가지기 어렵게 된 이들의 울분은 외면한 채로 말이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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