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현장에서] 싸이월드와 '안 잊혀질 권리'
뉴스종합| 2020-07-01 10:02

"국민 펀딩을 해서라도 살려주세요"

전제완 싸이월드 대표와의 두 차례 본지 단독 인터뷰가 보도된 뒤, 독자들로부터 메일이 쏟아졌다. 이용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라도 폐업 위기에 몰린 싸이월드를 살려, 사진을 찾고 싶다는 내용이 대다수다. 싸이월드에 담긴 사연도 다양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동영상을 찾아야 한다는 독자부터, 대학시절 친구들과의 사진을 찾고 싶다는 이용자도 많다. 쓰러져 가는 기업 하나를 살리기 위해 이용자가 자진해 기꺼이 지갑을 열겠다는 사례가 또 있었던가. '추억'을 넘어 값을 매길 수 없는 '데이터' 때문이다.

'잊혀질 권리'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에 남아있는 자신의 개인정보나 링크 기록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반면 2000만 이용자들에게 싸이월드는 그 반대다. '안 잊혀질 권리'다. 싸이월드는 사진, 일기가 담긴 '타임캡슐'이다. 잊혀지면 안되는 이용자의 데이터가 싸이월드에 한가득이다.

애석하게도 2000만 이용자들이 '안 잊혀질 권리'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현행법 상 싸이월드가 최종 폐업하게 될 경우 이용자의 사진·다이어리 등의 방대한 데이터는 모두 폐기 조치된다. 전기통신망법 제29조에 따라 사업을 폐업하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를 즉각 폐기하도록 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제26조에 따라 폐업 30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이를 통보하고 이용자에게 백업 공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 데이터 백업 공지를 하더라도 정상적인 데이터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데이터 백업을 위해 망을 정상화하는 작업에도 비용이 투입돼야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은 탓이다.

정부 입장도 난감하지만 사실 정부가 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데이터 백업을 위해 정부가 민간 기업에 비용을 투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방대한 개인정보가 있기 때문에 제3자인 정부가 싸이월드 데이터에 접근해 망을 정상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싸이월드가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이번 싸이월드 사태로 '디지털 타임캡슐'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렸다.

카카오스토리의 아이 성장 사진이, 페이스북 속 글들이 어쩌면 싸이월드 속 데이터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누구도 '영원한' 서비스를 장담할 수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을 인화해 놓을 걸 그랬다"는 이용자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 '안 잊혀질 권리' 찾기 행보는 반가운 일이다. 허은아 미래통합당 의원 주최로 오는 10일 싸이월드 토론회가 개최된다. 이용자의 데이터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제도 도입을 위해서다.

법제화가 능사는 아니겠지만 '잊혀질 권리' 만큼이나 '안 잊혀질 권리'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싸이월드를 통해 경험했다. '제2의 싸이월드'는 방지해야 한다. 이용자의 추억이, 또다시 '안 잊혀질 권리'를 찾기 위한 '학습비'가 되어선 안 된다.

박세정 미래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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