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팀장시각] 급히 키워 빨리 죽였다
뉴스종합| 2020-07-02 10:31

송나라 때 한 농부가 벼를 심었다. 그는 옆집 벼보다 자신이 심은 벼가 천천히 크자 뿌리를 조금 들어올렸다. 벼가 더 커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음날 그 농부의 벼는 죄다 죽었다. 빨리 크길 바라는 마음에 벼의 뿌리를 들어올려 키가 커보이게했더니 결국 수분 흡수 부족으로 논의 모든 벼가 다 죽어버린 것이다. ‘알묘조장(揠苗助長)’ 고사다. 사실 식물이 제대로 크게 하려면 밟아줘야 한다. 토양에 뿌리가 제대로 착근해야 식물은 잘 자란다. 식목 후 땅을 밟아주는 것도 같은 이치다.

지난 6월 30일 오후 3시,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는 40여명의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같은 시각 금감원에선 라임 분쟁조정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피해자들은 서로를 알아보며 “이번에도 나오셨어요? 저는 라임 때문에 잠을 못자요”, “저는 옵티머스 때문에 나왔어요” 등 사연들도 다양했다.

다음날인 7월 1일 금감원은 ‘100% 배상’을 펀드 판매사(은행)에 권고했다. 말도안되는 상품을 팔았기에 ‘계약 자체가 무효’란 판단에서다.

주지하듯 오늘 사모펀드 사고의 기원은 5년전이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자산운용사 설립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꿨다. 자기자본 규모는 20억원으로 낮췄다. 전문인력은 3명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투자자 요건도 낮췄다. 기존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떨어졌다. 회사 설립 기준이 낮아지고 투자 하한이 떨어지자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10년 사모펀드 수탁고는 120조원에서 이달엔 400조원을 넘어섰다. ‘사모 광풍’이었다. 문제는 곳곳에서 터졌다. 자고나면 ‘또냐’는 말이 나왔다.

라임자산운용 사태는 시작이었고 이후 알펜루트자산운용, 디스커버리자산운용에 이어 옵티머스자산운용까지 줄줄이 환매중단 대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사기에 가까운 자산운용의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문제가 터지자 시장은 급속도로 말랐다. 지난해 6월말 27조원대였던 사모펀드의 개인투자자 판매 잔액은 올해 3월말에는 21조원으로 고꾸라졌다. 은행들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모펀드 판매를 중단하거나 보류하고 있다. 사모 시장을 급하게 키웠다 죄다 죽여 버린 꼴이 됐다.

미국 사모 펀드는 ‘진입장벽’이 무지하게 높다. 투자자 기준은 금융자산이 100만달러 이상이어야 한다. 본인이 거주하는 집가격은 제외된다. 100만달러의 금융자산은 인플레율에 따라 매 5년마다 상향된다. 2년간 연소득은 20만달러가 넘어야 한다. 소위 돈 많아 콧방귀 좀 뀐다는 인사들만 투자를 할 수 있게 제도로 막아 놓은 곳이 미국이다. 미국도 처음부터 이렇게 강력한 장벽을 세운 것은 아니다. 2009년 메이도프 사태가 제도 보완의 계기였다.

한국에서도 사실 사모펀드는 소위 ‘꾼’들의 놀이터였다. 진입장벽이 매우 높아 일반인들은 접근이 안됐다. 그래서 사모시장 사고는 외부로 알려지질 않았다. 돈을 잃은 측은 체면을 구기지 않기 위해 입을 닫았고, 돈을 번 측 역시 웃으며 입을 닫았던 곳이 사모시장이다. 문제는 진입장벽을 허물자 생겼다. 심지어 은행에서 사모펀드를 팔자 원금이 보장되는 줄 알고 산 인사들도 부지기수다. 이제는 다시 장벽을 쌓을 때다. 시장도 식물도 밟아야 잘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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