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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포럼] 유연한 미디어산업 규제 프레임 구축해야 할 때
뉴스종합| 2020-07-09 11:39
정부는 지난달 제12차 정보통신전략위원회에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심의, 의결했다. 국내 디지털 미디어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국내외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업계가 낡은 규제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소규제의 원칙 아래 ▷유료방송시장 점유율 규제 폐지 ▷온라인 비디오물 자율 등급분류제 도입 ▷방송통신 분야 인수합병(M&A) 절차 간소화 등 미디어 플랫폼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기로 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늘어난 비대면 활동이 미디어 이용량 증가로 이어지면서 한국 시장에서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더욱 상승하고 있다. 반면에 이들 기업의 파상 공세에 대적할 만한 국내 미디어 기업은 마땅히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보통신전략위원회의 결정은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정부는 연내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고 내년에 시행령 등 하부규정을 정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정부의 계획이 실행되려면 우선 ‘국회’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미디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2015년 특정 유료방송 사업자의 가입자 점유율이 33%를 넘길 수 없도록 ‘3년 시한’으로 도입한 합산규제가 대표적이다. 2018년 6월 일몰 이후에도 연장 여부와 사후규제를 놓고 국회의 논의가 지속되는 바람에 합산규제는 2년여 동안 ‘없지만 있는’ 존재감을 발휘했다. 덕분에 이 기간 방송통신사업자의 M&A는 합산규제의 프레임 안에서 이뤄져 왔다.

현재 국내 방송 산업은 규제의 불확실성 속에 총체적 재구조화가 진행 중이다. 특히 OTT 서비스의 확산은 플랫폼 사업자, 콘텐츠 사업자 내부의 경쟁을 넘어 콘텐츠와 플랫폼의 결합 및 경쟁 구도를 추동하고 있으며, 기존 방송의 경계를 넘어 융합 경쟁의 시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OTT 넷플릭스와 국내 IPTV 사업자는 결합서비스를 출시했고, 국내 콘텐츠 사업자와 OTT 사업자 간의 파트너십이 활발히 진행되는 등 글로컬(glocal) 차원의 콘텐츠 경쟁, 서비스 경쟁이 가시화 되는 추세다.

규모가 작고 한정된 국내 시장 경쟁만으로는 미디어 산업의 변화와 혁신에 대응하기 어렵다. 사업자 간 가입자 유치 중심의 저가 경쟁으로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 콘텐츠와 서비스 개발은 뒷전이 되고 있다. 수직적 규제 체계와 시장 점유율과 같은 사전 규제 등 미디어 시장의 발전을 저해하는 전통적 규제 체계도 여전하다.

더 이상 국내 미디어 산업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하루라도 빨리 유연한 방송통신 규제 프레임을 구축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면서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후규제를 적용하는 방향전환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국내 미디어산업의 질적 전환을 도모하고, 글로벌 사업자들과 경쟁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데 정부와 국회,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혜정 법무법인 동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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