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서영상의 현장에서] 가짜뉴스와 소송전
뉴스종합| 2020-10-06 11:21

기자가 된 지 5년이 다 돼간다. 이쯤이면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여전히 기사를 쓸 때는 긴장되고 무섭다. 대부분 기사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의도치 않게 당사자들이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원고지 3~4장 분량의 짧은 기사를 쓸 때도 ‘송고’ 버튼을 누르기 전이면 망설이다가 다시 한 번 훑어보곤 한다. 아마 대부분의 기자가 나와 같을 것이다.

최근 들어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내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이 늘고 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상주하며 많은 법조인을 만나고 기사를 쓰는 것이 본업이지만 기사로 인해 그들의 업무 속에서 당사자로 만난다는 것은 겪고 싶지 않은 경험임이 틀림없다.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이들은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자신의 권리 구제를 받기 어려운 소시민이 아니다. 진실을 해명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놀랍다.

‘서두르지 않고 지치지 않으면서 하나하나 따박따박 진행할 것’. 지난 7월 29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허위 보도를 한 기자들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며 올린 글이다. 그는 해당 기자들의 실명까지 거론해가며 글을 올린 뒤 실제 언론사나 기자를 상대로 수억원대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형사 고소했다.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무기 삼아 싸우고 있는 것은 현 법무부 장관도 해당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후 언론을 향해 강경 대응할 것을 시사했다. 그는 지난 2일 페이스북에 무책임한 의혹 제기에 대해 사과를 촉구하면서 응하지 않는다면 이른 시일 내에 법적 조치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언론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보수 언론의 무분별한 정치 공세라고 못 박았다. 검찰을 지휘·감독하는 현 법무부 장관이 자신 관련 의혹을 제기한 언론을 고발한다는 것만으로도 기자들을 겁박해 취재 보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소지가 있어보인다.

이 같은 언론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제도화 순서를 밟고 있다. 지난달 법무부가 발표한 상법개정안의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언론사가 포함된 것이 대표적이다. 개정안을 발표하며 법무부는 법문에 포함되지도 않은 언론사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가짜뉴스 등에 대한 대응 규정으로 개정안을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특정인을 폄훼하기 위한 악의적인 거짓 보도는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신속한 보도와 꼼꼼한 팩트 체크를 동시에 요구받는 기자들에게 기사가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악의적인 허위 보도를 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각종 소송이 ‘힘 있는 자’들의 새로운 ‘무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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