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재정준칙, 4년前보다 후퇴…국회 통과 난망
뉴스종합| 2020-10-07 11:30

정부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4년전 박근혜 정부 후반기에 추진했던 재정건전화법에 비해 준칙의 기준이 3분의1 이상 대폭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4년전에는 국가채무 한도를 국내총생산(GDP)의 45% 이내로 관리토록 규정했으나 이번엔 이를 60%로 대폭 완화했고, 재정적자 기준도 4년전 관리재정수지에서 이번엔 대규모 흑자가 예상되는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포함해 산출하는 통합재정수지로 변경한 것이다.

4년전 국회에 제출된 재정건전화법은 당시 후반기를 맞은 박근혜 정부의 미온적 태도와 국회의 무관심 속에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과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한 지출 확대로 재정이 크게 악화되면서 재정준칙 기준도 그만큼 후퇴한 것이다.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4년 전인 2016년 9월 범정부적인 재정건전성 관리의 법적·제도적 틀을 마련한다며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을 마련해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국회에 제출했다. 이번에 마련한 재정준칙은 이의 연장선상에 있으나, 4년 전과 비교하면 준칙의 기준이 대폭 후퇴했다.

국가채무 한도의 경우 4년 전에는 GDP의 45% 이내로 관리하고, 5년마다 재검토가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반면에 이번에 마련한 재정준칙에서는 국가채무 한도를 GDP의 60%로 규정하고, 5년마다 재검토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 계산으로 4년 전보다 3분의1 수준(15%포인트) 후퇴한 것이다.

당해연도의 재정적자 한도 규정에서는 더욱 후퇴했다. 4년 전에는 관리재정수지의 -3% 이내에서 관리토록 했으나, 이번엔 그 기준(-3%)을 통합재정수지로 바꾸어 기준을 느슨하게 만든 것이다.

통합재정수지는 국세수입과 각종 사회보장성기금을 합한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빼 산출하는 반면, 관리재정수지는 실질적인 재정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제외해 산출한다. 대체로 통합수지는 관리수지에 비해 2~3%포인트 좋은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통합수지는 2009년과 2015년을 제외하고 매년 흑자를 냈지만, 관리수지는 2002, 2003년과 2007년 등 3개년을 제외하고 매년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엔 통합수지 적자가 -0.6%였지만, 관리수지 적자는 -2.8%에 달했다. 통합수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그만큼 느슨하게 관리해도 되는 셈이다.

이는 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사회보험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지금은 연금을 축적해나가는 시기로 2040년까지는 흑자가 예상된다. 반면에 유럽은 연금의 역사가 길어 연금 지급이 본격화해 사회보험 수지도 악화되고 있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유럽처럼 사회보험기금을 포함한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재정준칙의 기준을 크게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부수적인 제도면에서도 대폭 후퇴했다. 4년 전에는 재정지출을 수반하는 법률을 제출할 경우 재원조달 방안을 의무적으로 첨부토록 하는 ‘페이-고(pay-go)’ 제도를 명문화했고, 장기재정추계 제출시 사회보험의 재정건전화 계획을 제출토록 하는 등의 조치를 규정했지만, 이번에는 제외됐다.

이처럼 재정준칙 기준이 후퇴한 것은 재정상태가 그 사이에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역으로 2016년에 정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재정건전화법을 확정·시행했을 경우 재정악화를 최소화할 수 있었으나, 정부와 국회의 무책임이 결합해 그 기회를 상실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재정준칙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낮아 4년 전 재정건전화법 제정 실패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해준 기자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