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반
세계 최고수준 징벌적 상속세…기업 투자 의욕 꺾는다
뉴스종합| 2020-10-27 10:36

[헤럴드경제 정순식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이후 세계 최고 수준의 징벌적 상속세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산업화시대를 이끌던 재계 1·2세대가 잇따라 타계 혹은 은퇴하며 승계 수요가 급증하자 천문학적인 상속세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는 양상이다. 징벌적 상속세율로 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속출하며 논란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상속세제의 개편 논의가 이 회장의 별세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상속인들이 납부해야할 세금만 10조원을 훌쩍 넘어서자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의 99%가 가족기업임을 감안할 때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명목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명목 세율상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은 2위다. 하지만 여기에 최대주주 또는 특수관계인의 주식을 물려받을 때 붙는 최대 20%의 할증까지 더하면 최고세율은 60%까지 치솟는다. 이 부회장 등 상속인들도 할증세율을 적용받게 된다. 상속 금액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부담하는 구조 탓에 기업에 대한 징벌적 과세라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이같은 지적에도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좀처럼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상속세를 낮추고 안정적인 지배구조 아래 투자 증가와 고용 창출 등 사회기여를 유도해야한다는 인식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가업 승계는 부(富)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강해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좀처럼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앞서 정부·여당이 지난해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일부 개편하기는 했지만, 공제대상 기업 및 공제한도 확대 등은 빠진 채 사후관리 기간 정도만 단축한 ‘반쪽’짜리 대책에 그치며 오히려 기업인들의 공분을 샀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세계 최고수준의 상속세율이 기업 투자 의욕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지난해 제도개선을 건의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지난달 코로나 극복과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세제개편 토론회에서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상속세를 장기적으로 폐지할 것을 건의했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 자리에서 “올해 상속세를 없애면 2034년까지 실질GDP는 약 0.31% 증가하고, 산업별로는 광공업 0.32%, 서비스업 0.31%, 농수산업 0.13%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원 교수는 이어 “스웨덴 등 많은 나라가 상속세를 폐지했고, 미국과 일본 같이 상속세를 유지하는 국가들도 기초공제액 인상이나 가업 상속에 대한 특례 확대 등을 통해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고 가업 상속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거대 여당이 국회를 점유한 21대 국회에서 상속세율 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상속세율 인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지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치권의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막대한 상속세를 조달하기 위해 보유 지분을 매각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사업을 접거나 경영권 위협에 노출되는 사례들이 목격되고 있으며, 향후에도 기업의 승계 과정에서 빈번하게 동일한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이우현 OCI 부회장은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해 최대주주 지위를 위협 당한 사례로 꼽힌다. 2017년 부친 고(故)이수영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경영권을 넘겨받았지만, 2000억원대의 상속세를 부담하기 위해 상속 지분을 일부 매각하면서 최대 주주에서 3대 주주로 내려앉았다. 부친 이수영 전 회장으로부터 6.12%의 지분을 받은 대가로 2000억원 안팎의 세금이 부과된 영향이었다. 최근 주식 차입으로 최대주주로 복귀는 했지만, 지분이 5%대여서 경영권이 여전히 불안하다는 평가다. 이어 1967년 창업한 국내 1위 종자업체 농우바이오는 창업주 별세 후 유족들이 12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농협경제지주에 회사를 매각한 바 있다. 또 코스닥 상장기업 유니더스의 김성훈 대표도 상속세 50억원 부담을 이유로 경영권을 포기했으며, 세계 1위 손톱깎이 업체 쓰리세븐 150억원의 상속세 부담을 못이겨 회사 지분 전량을 중외홀딩스에 매각한 바 있다.

또 고(故) 구본무 회장으로부터 2018년 ㈜LG 지분 8.8%를 상속받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세금만 약 7200억원에 달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도 올초 부친 신격호 명예회장을 떠나보내면서 3000억원 안팎의 상속세를 부과받았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속세 제도를 계속 수정해 나가야 한다”면서 “할증된 최고 세율 65%는 ‘사망세(death tax)’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가업상속공제제도 확대 논의가 나오지만 보다 전향적인 상속세 완화나 폐지가 더욱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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