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매년 발표하는 대학순위는 국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평가요소로는 강의 정원수(19명 미만), 교수 대 학생 비율, 학장들이 매긴 주관적인 대학 순위 등이 들어있다. 또한 각각의 기준에 가중치를 부여하는데, 가중치는 상식에 근거한다. 객관성과는 거리가 있는 이런 대학순위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정원 수를 19명으로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순위를 올리는 게 가능하다. 그런데도 세계의 대학들은 평가 순위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매긴 순위는 믿을 만 할까? 가장 높은 건물, 가장 빠른 모터사이클 등은 액면 그대로 수치가 드러나기 때문에 객관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관적인 요소가 있게 마련이라고 피터 에르디 칼라마주대 복잡계 연구분야 특임교수는 ‘랭킹’(라이팅하우스)에서 지적한다. 가령 한 빌딩의 공식적인 높이를 수치로 표현할 때 ,옥상에 설치된 첨탑의 높이를 포함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있다. 자유의 여신상은 첨탑을 포함하지만 시카고 월리스 타워에 있는 안테나는 포함하지 않는다. 빌딩에 포함된 부분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는 주관적이다.
저자는 우리의 비교본능, 열등감과 우월감 때문에 순위에 매달리게 된다며, 순위 게임의 규칙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순위는 객관성이라는 환상과 실제의 결합이며 언제나 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작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거나 내편과 적을 가르는 흑백논리, 반복의 힘, 권위에 호소하기, 언론조작 등을 통해 벌어진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온라인 비즈니스 플랫폼이다. 매일 소비하고 생산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들을 이들은 공개되지 않은 알고리즘에 따라 처리해 다양한 순위목록을 만들어 이용자들에게 추천하고 마케팅에 활용한다.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구글의 검색 순위, 넷플릭스의 추천 리스트 등은 모두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다. 문제는 설계하는데 주관이 개입된다는 사실이다. 일단 순위가 공개되면 이는 즉각 새로운 순위에 영향을 미친다. 편향효과가 발생하고 핵심 이해당사자들이 순위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물론 똑똑한 소비자들은 이런 조작과 편향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결국 스스로 속아 넘어간다는데 순위의 역설이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검색 결과를 통해 정치적 편향을 조작하는 일이 부동층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20퍼센트가 넘는다.
저자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신뢰하되 조심하라’는 것이다. 진화의 결과이기도 한 순위매기기는 순기능도 있다. 사회적 순위는 공동체의 의사결정과 선택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출현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신뢰하되, 순위와 등급이 매겨지는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지적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랭킹/피터 에르디 지음, 김동규 옮김/라이팅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