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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로 한진칼 목줄 쥔 산은…'신의 한수' vs '동반 부실'
뉴스종합| 2020-11-22 17:20
지난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세워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모습. [연합뉴스]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산업은행이 통합 국적항공사를 출범시키고, 산업을 통째로 구조조정 하겠다는 그림을 밝히면서 여러 논란을 맞닥뜨리고 있다. 큰 맥락을 정리하면 이렇다.

▷아시아나항공을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 도태되도록 내버려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겠다는 취지 아래, 경영권 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 처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지원한 것 아닌가(특히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오너 일가를 혈세로 지원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양대 국적항공사 통합시 구조조정을 피하기 힘들 텐데, 공적 자금이 투입된 상황에서 효율적인 업황 대응이 가능하겠는가.

▶"한진해운 파산 경험 반면교사…피치 못할 선택"

이같은 논란들에도 불구, 인수합병(M&A) 업계 전문가들 다수는 산업은행의 결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이다. 우선 첫 번째 논란에 대해, 시장 원리에만 맡기지 않고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한 것은 "더 큰 손실, 더 많은 혈세 투입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나 구조조정 원칙의 훼손을 우려하다 결국 한진해운의 파산을 막지 못한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을 것이란 평가다.

한진해운 채권단이 신규 지원을 거부했던 2016년 8월, 당시 추산된 2017년 말까지의 부족자금은 1조2000억~1조3000억원 수준이었다. 그 중 채권단은 한진에 7000억원을 마련하라고 요구했고, 한진그룹은 이에 못 미치는 5600억원까지는 조달 가능하다는 내용의 경영 정상화 방안을 제출했다. 단 1400억원 수준의 간극이었지만, 채권단은 구조조정 원칙 및 기존 처리 사례와의 이해 상충 등을 이유로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보냈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현대상선을 어떻게 해서든 살리기 위해 2년간 3조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이 투입됐다. 한진해운이 파산 직전 필요로 했던 유동성 지원 규모(7000억원 안팎)의 4배에 달한다.

▶"오너일가 '특혜 제공' 지적은 정치적…경영권만 지켰을 뿐 다 내줬다"

이용우 의원(왼쪽에서 네번째)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산업은행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추진’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해당 의원들은 "한진칼은 경영권 분쟁이 있는 회사인데 이런 회사에 자금을 투입하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경영권 분쟁에 있는 총수 일가를 지원하는 거래가 될 수 있다"며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부담이 있던 산업은행과 경영권 분쟁에서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한진칼) 총수 일가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물론 아시아나아항공에 새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과, 경영권 분쟁 상황에 개입해 조원태 회장 손을 들어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위에서 열거한 두 번째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다. 경영권 분쟁 상대방인 행동주의펀드 KCGI(강성부 펀드) 등 3자연합이 주장하듯,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한진칼 유상증자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기존 주주에 먼저 부여하고 이후 부족 자금에 대해서만 산은이 나섰다면, 투입되는 자금 규모는 같으면서도 공정성 논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항공으로 하여금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선, 당연히 현재 경영권을 갖고 있는 조 회장부터 설득해야 했다. 만약 산은이 3자연합 측에 먼저 비공개 접촉해 부족자금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을지 문의했다면, 오히려 일방적으로 행동주의펀드의 손을 들어줬다는 역사적 오점을 남겼을 것이다. 결국 산은 입장에선 '조 회장을 설득할 카드'를 준비하는 일이 최우선이었고, 여기에 3자연합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데에 도움이 될 '당근'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딜은 첫 단계에서부터 좌초됐을 것이다.

결국 산은이 조 회장에 대해 특혜를 제공했는지 여부는, 조 회장에 '당근'을 제공하면서도 그 반대급부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어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조 회장으로 하여금 경영권 방어라는 급선무를 해결하게 도움을 줬다 하더라도, 그 대가로 막대한 책임과 부담을 부여한다면 특혜를 제공했다고 보기 힘들다.

지난 18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단 지배구조 측면에서 한진칼은 산은에 사외이사 3인과 감사위원 등을 선임할 권리를 내줬고, 주요 경영사항도 산은과 사전협의하고 동의를 받은 뒤에 추진키로 했다. 경영 성과가 미흡할 시 조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 교체나 해임이 추진될 수 있는 근거도 투자합의서에 담겼다. 나아가 만약 한진칼이 이같은 합의 내용을 위반하면 총 5000억원의 위약금과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도록 했다. 이를 담보하기 위해 산은은 ▷계열주인 조원태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주식 전체와 ▷한진칼이 향후 인수할 대한항공 신주 7300억원을 담보로 취득해, 필요시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까지 확보했다.

M&A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든 경영 판단을 산은의 눈치를 보며 내려야 하고, 산은 마음에 들지 않을 시 일방적으로 경영권을 뺏길 수 있는 권리를 내준 것"이라며 "어느 투자자도 M&A에서 이같은 조건을 따내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대한항공의 일반주주 입장에선 조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대한항공의 모든 것을 내어준 현 상황이 불만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조 회장에 '특혜'가 제공됐다고 보긴 힘들다는 평가다.

▶"산업 구조조정 성공 여부는 불투명…정치적 개입 최소화해야"

구조조정 효율성에 대한 논란도 있다. 양대 국적 항공사의 통합은 자연스레 중복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 필요성을 키울 텐데, 공적 자금의 지원을 받고 산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효율적인 업황 대응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이다. 실제 산은은 한진그룹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 및 자회사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확약받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19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주제로 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산은 측이 직접 설명했듯 관리직 등 양사 중복 인력은 800~1000명에 달한다. 연간 자연 감소 인원과 신규 사업 추진 등을 고려하면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신규 사업에 대한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정치적 언급에 지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두 항공사가 통합 이후 과점적 시장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하더라도 외항사의 점유율이 33% 이상이라 운임을 일방적으로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인력 구조조정도 없다면 통합의 효과를 어디에서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에 답해야 한다.

또 다른 M&A 업계 관계자는 "당장 경영권 방어가 급급한 한진칼 오너일가를 끌어들여 아시아나항공 부담을 나눠서 지는 것 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 산업 구조조정을 성공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시장 원리에만 충실했던 한진해운을 반면교사 삼은 것까진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아예 시장원리를 배제하고 고용 유지에만 방점을 둔다면 그 역시 구조조정 실패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hum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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