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라이프칼럼] ‘나도 자연인’이면 족하다
뉴스종합| 2020-12-08 13:25

최근 경기 고양시 일산에 사는 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일산 아파트를 팔고 인근 성석동에 있는 텃밭 딸린 전원주택으로 이사했다”고 뜻밖의 근황을 전했다. 친구는 이어 “이제 꽃·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을 꾸미고, 작은 텃밭에서 친환경 채소도 직접 키워 먹는 삶을 살게 되었다”며 “마침내 ‘남자의 로망’을 이뤘다”고 기뻐했다. 목소리에는 들뜬 기대감이 한껏 묻어났다.

그의 말마따나 흔히 시골(전원)생활은 ‘도시인의 로망’으로 불린다. 특히 5060대 남자의 로망이다. 농부이자 귀농·귀촌강사인 필자는 전국을 다니며 강의할 때마다 시골(전원)생활을 갈망하는 5060 남자들의 간절한 눈빛을 확인하곤 한다.

이런 ‘남자의 로망’에 불을 지핀 것은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이 한몫했다. 자연을 벗해 원시적 삶을 사는 자연인의 일상에 도시의 5060 남자들은 흠뻑 빠져든다.

은퇴하면 그들처럼 살겠다고 다짐하고, 이후 실천에 옮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귀농·귀촌 인구는 모두 감소했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으로 들어가는 귀산촌은 1.2% 증가했다.

그러나 ‘나는 자연인’ 중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산중 오지로 도피하듯 선택한 삶이다. TV를 통해 그들의 자연동화 및 무욕의 삶, 약초 등에 대한 지식 등은 배우고 대리만족을 얻는 것은 몰라도 실제 이를 따라 하는 것은 금물이다. 정상적인 귀농·귀촌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인’은 전기도 안 들어오고 진입로도 비포장인 깊은 산골 오지에서 원시인(?)처럼 생활한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농사도, 힐링 시골생활도 맛보기 어렵다. 귀농을 해 제법 규모 있는 농사를 짓고자 한다면 대개 지하수를 농업용수로 이용하고, 농산물건조기와 저온저장고 등도 갖춰야 한다. 모두 전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울퉁불퉁한 비포장 진입로는 오가는 데에 힘이 들고 불편할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올해처럼 장기간 집중호우가 내리게 되면 진입로는 길 아닌 개울로 변하기 십상이다. 밤에는 촛불을 켜야 하고 비포장길을 따라 지게를 지고 생필품을 조달해야 한다면 여기에서 힐링을 얻을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2박3일만 지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진 하산할 것이다.

다시 필자 친구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현재 일산신도시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귀농·귀촌은 어렵기 때문에 자신과 가족의 여건에 맞는 도시 외곽의 전원생활을 택한 것이다. 아내도 동의했고 좋아한단다. 아마도 친구 부부는 마당을 예쁘게 꾸미고 작은 텃밭에서 감자·고추·옥수수 등을 직접 키워 먹는 ‘도시농부’이자 ‘도시자연인’의 삶을 만끽하리라. ‘나는 자연인’이 아닌 ‘나도 자연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농촌의 저밀도 삶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꼭 귀농·귀촌할 필요도, ‘나는 자연인’을 따라 할 필요도 없다. 시골이든, 산골이든 아니면 전원풍의 도시든 어디에서든지 진정 자연이 주는 선물인 ‘느림·여유·힐링·안식’ 등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장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로망인 자연의 삶을 추구하는 ‘나도 자연인’이면 충분히 족하다.

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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