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산四色] 인생 망치는 간단한 방법
뉴스종합| 2020-12-09 11:36

2005년 개봉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많은 팬으로부터 사랑받은 수작이다. ‘어벤져스’ 같은 블록버스터만큼 전 세계의 관심을 모은 것은 아니지만 사랑과 기억, 고통과 망각을 다룬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많은 이가 공감했고 이들의 성원에 부응해 2015년 재개봉하기도 했다. 변해버린 사랑으로 고통받기 힘겨워 그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설정은 신선하면서도 일면 공감을 전해줬다. 기억을 지우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우리의 인생은 험난한 항해 같기도 하고, 때론 순풍에 돛단배 같기도 하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스물이든, 서른이든, 마흔이든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 생의 주인공이 걸어온 길은 자신의 발판이 될 수도 있고, 돌부리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자신이 선택했던 과거이며, 지울수 없는 문신 같은 것이다.

30대에 자신의 10대를 돌아본다면 즐거운 일도 많겠지만 치기 어린 언행에 낯이 뜨거워지는 기억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이가 있다면 자신의 싸이월드나 페북을 열어 보길 권한다. 일기장이 남아 있다면 더욱 가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호기를 부리기 위해 또는 지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했던 경거망동이 자신의 인생에 철퇴를 내려칠 수 있는 걸 알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온갖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의 삶은 그곳에 많든 적든 남아 있게 된다. 삭제된 내용이 누군가의 블로그에 복사됐다면 이는 온라인 세계를 망령처럼 떠돌며 생명을 유지하거나 확산된다.

최근 프로야구 삼성의 신인 선수가 SNS에 팀 선·후배는 물론 사회적 약자 등 가리지 않고 악성 게시물을 올린 것이 지인의 공개로 드러나면서 방출됐다.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이 선수는 적어도 10년간 땀을 흘려 쌓아올렸을 자신의 야구인생이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의 인생을 이렇게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언행이었다. 아무도 원망할 필요가 없다. ‘비공개 계정이었는데 공개한 사람이 문제’라고 분풀이를 한다면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최근 대부분의 스포츠계와 팀은 선수들의 인성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SNS 등 개인적인 영역은 성인들인 만큼 금지할 도리가 없다.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킬 게시물을 올리는 것은 본인뿐 아니라 팀의 이미지마저 먹칠한다는 인식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스스로 선을 넘지 않는 절제력을 갖추지 않았다면 그의 SNS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셈이다. 먼 나라, 조그만 마을에서 일어난 선행이 지구 반대편에서도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SNS의 선한 영향력 중 하나다.

SNS는 죄가 없다. 좋은 일에 쓰면 너무도 편리한 시스템이지만 나쁜 말로 범벅된 게시물을 올리면 돌이킬 수 없는 부메랑으로 타인은 물론 자신도 파괴할 수 있는 물건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남긴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말은 이후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인 등 수많은 사람이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으로 설화(舌禍)를 겪을 때마다 소환돼 무릎을 치게 한다. 그의 말은 자신의 게시물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성공하기는 어려워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너무도 간단한 게 인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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