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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악열차, 환경 논리에 결국 좌초…길 잃은 한걸음모델
뉴스종합| 2020-12-11 09:42
지리산 형제봉 일대에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 [하동군 제공]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지리산에 산악열차를 설치하는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렸다. 정부 주도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협의를 했지만 결국 재검토라는 결론을 내렸다.

기획재정부는 11일 한걸음 모델을 활용해 지리산 산림관광 사업에 대해 논의한 결과 '사업 재검토'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경사도 제한 개선 등 법률 개정 없이 현행 제도 내에서 사업계획을 축소,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산에 숙박시설, 편의시설 등을 짓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나머지 산악열차(무가선열차), 케이블카, 모노레일 등 설치는 법 개정 없이도 가능하지만 규모 축소 등 설계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경제적 타당성 및 환경 영향도 외부 기관을 통해 다시 판단하기로 했다.

앞으로 중앙정부는 사업에서 손을 떼고 하동군이 자체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원점에서 사업 계획을 다시 짜고 주민 의견을 수렴, 갈등을 조정할 계획이다. 기존 사업 계획이 좌초된 셈이다.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는 지리산에 산악열차와 모노레일, 케이블카를 깔고 휴양시설을 짓는 산림관광 활성화 사업이다. 스위스 알프스산의 산악열차를 모범 사례로 삼고 있어 알프스 프로젝트라고 사업명을 지었다. 사업비는 총 1650억원으로 민간이 직접 건설하고 운영하는 민자사업으로 추진된다.

이번 논의는 한걸음모델 상생조정기구를 통해 이뤄졌다. 기재부를 비롯해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 산림청, 경상남도, 하동군, 녹색연합 등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지난 6월부터 20여 차례 회의를 거쳤지만 갈등이 첨예하다보니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가장 큰 쟁점은 '환경 영향'이었다.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의 서식지를 빼앗는다는 비판도 했다.

국회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우원식·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혜영 정의당 등은 지난달 "기후위기와 코로나로 온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대규모 산악개발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예견된다"며 "한걸음모델에서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를 즉각 제외해라"는 입장문을 냈다.

문체부와 하동군 등은 "산림열차가 설치되는 경로는 기존에도 차량이 다녔던 도로로 환경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반달가슴곰에도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게다가 반달가슴곰 개체수가 파악되지 않고, 출범 지역 역시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경제성도 논란이 됐다. 하동군은 자체 평가 결과 비용편익(B/C) 값이 1 이상이고 경제성도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신뢰할 수 없는 결과라고 봤다.

지난 10월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 회원들이 지리산 형제봉에서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달곰친구들 제공]

한걸음모델이라는 사회적 대타협 모델을 통해 이해 갈등을 정부가 직접 조율하겠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애초부터 갈등을 좁히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걸음모델 상생조정기구는 참여자만 18명에 달하고, 전원합의를 추구하는 구조다. 각자 입장만 고집하다보니 일치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아울러 관광업계 관계자는 상생조정기구에 빠져있다보니 환경보호에 치우친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상생조정기구가 어떤 법적인 근거를 두고있지 않아 표결을 진행하기 어렵다"며 "같은 통계를 놓고도 각자 해석이 다르다보니 합의 방안을 찾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또다른 과제인 도심 내국인 공유숙박에 대해선 연내 결론을 내고 내년부턴 새로운 한걸음모델 과제를 2~3개 선정해 추진할 계획이다. 한걸음모델은 지난 6월 신산업 출현 시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타협 메커니즘이다.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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