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라이프칼럼] 성탄절에 떠오르는 배려
뉴스종합| 2020-12-22 12:02

세계2차대전 당시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미군 보병 분대 하나가 고립됐다. 고립된 상태에서 계속된 전투로 이미 식량은 바닥났고, 물마저도 신병의 수통에 한두 모금 마실 양이 전부였다. 그때 분대장이 마지막 전투가 될지 모르니 필요한 사람은 물 한 모금 마시고 전의를 다지자고 제안했다.

계속되는 치열한 전투에 배고프지 않은 사람과 목마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계급 순으로 분대장부터 신병이 가지고 있는 수통의 물을 한 모금씩 마시기로 했다. 만약을 위해 물을 아끼며 보관했던 신병은 낙담했다. 수통 속 물이 절대로 자신까지는 차례가 돌아올 수 없는 양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신병은 제일 마지막으로 수통을 건네받자마자 왈칵 울음을 쏟아냈다. 수통의 물이 자신이 제일 처음 분대장에게 전달할 때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흘러내리는 신병의 눈물 위로 때를 맞춰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분대장과 선임병들이 신병을 보며 따뜻하게 말을 건넨다.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간혹 떠올리는 이야기인데 실화인지 창작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으니 족히 40년이 넘은 세월인지라, 동화책에서 읽었는지, 만화책에서 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내용만큼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 속에 담아 놓은 이야기인지라 심장이 뛰는 한 계속 기억될 것이다.

배려는 이처럼 뭉클한 감동을 주면서 우리 사회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의료진과 국민의 배려로 견뎌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배려를 찾아보기 가장 어려운 곳이 어디일까. 이전에는 쉽게 답하기 어려웠는데 대한변협회장을 하다 보니 망설임 없이 대한민국 국회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한변협회장은 법률안과 관련해 국회를 자주 출입한다. 따라서 국회의원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분명 국가에 대한 충성과 국민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의원들도 있다. 슬픈 건 그 숫자가 절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배려는 의원 자신에게 가장 관대하고, 다음은 소속 정당이다. 상대 정당 의원에 대한 배려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만 고려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거침없이 상대 정당과 소속 의원들을 비난한다. 확인되지도 않은 루머까지 곁들이면서 공격한다. 20대 국회 4년 동안 말 한 번 안 해본 의원도 여럿 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그럴 거면 국민 대표들이 모여서 소통과 화합을 하라고 만든 국회에 왜 기를 쓰고 들어왔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실망이 쌓여 정치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는데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이 돼 본의 아니게 한 발 담그게 됐다. 후회막급이다. 괜히 정치에 대한 환멸만 더 키우게 됐다. 내가 ‘경제적 선진국, 정치적 후진국’의 불쌍한 국민임을 뼈저리게 확인했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전장에서 수통 속 물도 양보하는 배려의 정신을 여야가 보여주기 바란다. 그러면 코로나19보다 정치가 더 무섭다는 조롱이 없어질 것 같다.

사람은 희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정치가 희망을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산타클로스처럼 만날 수 없는 환상일까.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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