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헤럴드시사] ‘퍼펙트스톰’에 손든 영국의 브렉시트 협상
뉴스종합| 2020-12-30 12:01

크리스마스 하루 전인 24일 영국과 유럽연합(EU)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양 지역 간 미래 관계에 대한 협상을 타결했다. 지난 1월 31일 EU 탈퇴 협정이 브렉시트 조건이라면 미래 관계 협상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EU 간 제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로써 1973년 영국이 유럽대륙과 형성한 경제공동체 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올해 1월 말 양 지역은 브렉시트 조건에 합의하고 10월까지 미래 관계 협상을 타결하기로 했다. 미래 관계 협상 쟁점은 북해 어업권이었고,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협상 타결 가능성은 50 대 50 정도로 불투명했다. 영국은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을 이유로 협상 기간 연장을 거론했으나 더는 영국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EU 내에 형성되면서 ‘노딜’ 위기가 고조됐다. 하지만 시간은 EU 편이었다.

코로나가 협상을 지연시켰지만 막판 협상 타결에는 코로나가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염성이 70%나 높은 악성 코로나 변종이 발생하면서 영국에서의 코로나 신규 일일 확진자와 사망자가 각각 4만명과 350명을 넘어섰다. 입원환자의 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의료서비스 체계가 붕괴 직전이다.

전 세계 국가 대부분이 영국발 항공기 착륙을 금지시켰고, 런던을 포함한 잉글랜드 지역이 봉쇄될 정도로 코로나 위기가 고조되면서 영국에서는 변종 코로나와 노딜 브렉시트가 결합된 ‘퍼펙트스톰(여러 악재가 동시에 터지는 폭발력)’ 경고가 설득력을 얻게 됐다.

협상 타결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공정하고 균형된” 협정을 도출했고, EU-캐나다 무역협정(CETA) 식으로 협상을 타결했다고 밝혔다. 캐나다와 EU가 상품에 대한 관세와 비관세장벽을 철폐하면서 높은 수준의 통상규범을 채택한 것으로, EU에서는 CETA를 향후 무역협정의 플랫폼으로 사용할 것을 밝힌 바 있다. CETA 비유로 성공적인 협상을 홍보하려고 했겠지만 퍼펙트스톰에 속수무책인 영국이 손을 들었다.

쟁점이었던 수산물 어획량 쿼터는 EU 요구가 관철됐다. 존슨 총리는 EU 국가 소속 어선의 어획 쿼터를 3년 동안 80% 줄여 영국 어민의 이익 보호를 주장했지만 5년6개월 동안 25% 단계적 감소로 결론이 났다. 애초 EU는 6년 동안 25%를 요구했다. 위기상황에 내몰린 존슨 총리가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브렉시트 협상에서 가장 쟁점이 된 것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국경장벽 복원 문제이었다. 아일랜드는 어떤 형태의 장벽 설치도 반대했고, 결국 일정 기간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 영역으로 유지하는 것을 ‘안전장치(backstop)’란 이름으로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합의했다. 하지만 이는 브렉시트가 아니라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돼 결국 메이 총리는 사임했다. 존슨 총리는 이 점을 집중공격해 정권을 잡았고 장벽 설치를 거론해왔으나 북아일랜드를 EU 관세동맹으로 잔류하게 함으로써 아일랜드의 요구를 수용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백신이 접종되고 있지만 코로나19 리스크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딜 브렉시트’를 피할 수 있게 된 점은 양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긍정적인 요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47년 만에 영국과 EU는 안보·법·통관·검역 등에서 서로 다른 제도를 사용하게 되며, 영국인이나 EU 회원국 국민이 상대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대폭 줄였다. 모두에게 손해가 아닐 수 없다.

마틴 울프는 브렉시트로 영국이 주권을 되찾았다고 하지만 앞으로 EU가 취하는 조치에 영국이 속박될 수밖에 없어 브렉시트 피해가 엄청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영국 예산책임처(OBR)는 브렉시트가 자국 국내총생산(GDP)을 약 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가 어떨까 자못 궁금해진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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