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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기 연예톡톡]설민석을 통해 본 우리의 현행 지식예능 제작시스템
엔터테인먼트| 2020-12-30 12:25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역사 강사 설민석이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출연 중인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습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tvN 새 프로그램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의 2회(클레오파트편)에서 자문에 참가한 학자에 의해 오류 투성이라는 지적을 받은데 이어 그의 석사학위논문이 한 매체에 의해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이 보도가 나간 당일 재빨리 석사 논문 표절 의혹을 인정하고 프로그램 하차 의사를 전했다.

설민석이 역사에 무관심한 대중에게 흥미를 유발하게 강의한다는 강점은 분명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 관계는 명확해야 한다. 그 부분에서 오류가 발견된 이상,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방법은 찾아야 한다. 하차 발표에서 그런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려스러운 것은 방송가에 지식예능, 교양예능이 유행하면서 전문 강사를 섭외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늘고 있는데 반해, 우리의 방송시스템이 이를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예능PD들은 “전문가 섭외의 어려움이 있다.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면 TV 문법(재미)을 모르고, TV를 알면 전문성이 없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선을 넘는 녀석들’ ‘요즘 책방, 책을 읽어드립니다’ 등 소위 지식을 예능화하는 ‘교양 예능’ 프로그램들은 설민석 같은 인기 강사만 섭외한다면 만사형통이다. 혼자서 역사도 알려주고 북치고 장구치며 예능적 재미도 선사하기 때문이다.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는 시청률만 해도 5.2%(1회)-5.9%(2회)-5.5%(3회)로 예능물로는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 부분에서 제작진과 지식소매상 사이의 공모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양 측은 이해관계가 명확하게 일치한다. PD는 강사를 띄워 시청률을 높이고, 강사는 그 유명세를 바탕으로 더 많은 방송에 출연할 수 있다. 제작진에게는 클레오파트라편의 오류를 지적한 곽민수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의 자문보다는 설민석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여기서 제작진 사이에 일종의 타협이 발생한다. 전문성도 있고 TV의 문법(흥미)도 알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해당 분야를 흥미있게 말해줄 사람이 선택된다. 시청률이 전문성보다 더 중요한 것. 전문성은 살렸음에도 시청률이 안나온다면 PD 입장에서는 실패가 된다. 그러니 전문성은 포기할 수 있지만 시청률만은 포기하지 못한다.

하지만 김상욱(물리학), 정재승(과학), 백종원(음식. 요리) 등 전문성도 살리고 흥미도 살려 시청률도 올리는 성공사례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지식예능, 또는 교양예능에서 흥미를 살린다는 것은 시청자를 웃기라는 말이 아니다. 신뢰감을 주는 지식 자체가 흥미일 수도 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잘하는 게 흥미일 수도 있다. ‘알쓸신잡’ 이후 교양이 예능의 영역으로 점점 들어오면서 지식예능은 전문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연구부터 해야 할 듯하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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