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부구치소 국가 배상 찬반 논란
찬성 측 “재소자 인권 차원…반복 막아야”
반대 측 “교도 행정 차원의 일…세금 사용”
6일 첫 국가배상 소송 제기…판결 관심 커져
지난 4일 헤럴드경제 온라인판에 실린 기사의 일부.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 수용자들이 국가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 확진자 발생 이후 정부의 조치와 감염 확산의 관계’를 입증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네이버 홈페이지 캡처] |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잘 생각했소. 경위를 철처히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소자의 인권을 ○○○처럼 취급한 법무부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기자의 기사에 달린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댓글)
“구치소가 호텔이냐. 그걸 세금으로 왜 책임지라는 거야.”(기사에 달린 포털 사이트 다음의 댓글)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수용자들이 국가배상 소송을 한다고 하자, 각 포털 사이트 댓글란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법무부와 구치소가 코로나19 집단 감염 발생에도 마스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확진자와 비확진자를 격리시키지 않은 채 과밀 수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를 두고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요.
국가배상에 긍정적인 측에서는 “지난해 11월 27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동부구치소의 미흡한 대응이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하며 배상을 받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죠. 반면 국가배상에 부정적인 측에서는 “혐의가 있어 구속 수감된 사람들까지 국가에서 보호를 해야 하냐”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국가배상 논의는 지난 4일 정치권을 중심으로 본격화 했습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동부구치소 코로나 총 감염자가 1000명을 넘어 전체 수용 인원의 거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아비규환이 되어 가고 있다”며 “당 내에 진상 조사와 피해 구제를 위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피해 사례 접수와 국가 책임에 따른 배상 청구 등도 공동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한 것이죠.
그런데 국가배상이 정말 가능할까요. 저와 대화를 나눈 법조계 인사들은 대부분 ‘승소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2016년 구치소 내 수용자 과밀 수용이 위헌이라는 확인을 받았던 설현천 법무법인 명장 변호사는 “우선 국가에 배상을 받으려면 구치소와 관계부처의 과실이 확인돼야 한다”며 “이때 과실은 ‘중대한 과실’에 가까울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과실이 중대하다’는 판단이 들 정도로 국가의 잘못이 명백해야, 배상을 받아내는 데 무리없을 것이란 설명이었죠.
설 변호사는 2016년 구치소 내 수용자 과밀 수용 위헌 선고를 받을 때에도 “수용자 한 사람이 손과 발을 뻗을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이 비좁아, 개인의 권리가 과도하게 침해당했다는 게 명백했기에 위헌이 된 것”이라며 “구치소 측에서 고의로 방역 수칙을 위반했고 이로 인한 감염 확산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이 입증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재철법률사무소의 윤재철 변호사는 “국가배상 승소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윤 변호사는 2017년 구치소 과밀 수용에 대한 재판(2심)에서 승소한 바 있습니다. 그는 “설령 구치소 내 코로나19 최초 감염에 대한 차단이 어려웠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다 하더라도, 감염 이후부터 최근까지 벌어진 정부의 조치가 적절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천주교인권위원회 역시 지난 4일 “이미 다른 국가 교정시설에서 과밀수용된 수용자들의 집단감염 사례가 여러 차례 발생했고, 국제기구에서도 과밀 수용 해소를 권고하기도 했으나 법무부는 교정시설 차단 외에 뚜렷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왔다"며 교도 행정을 비판했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자가 확진자 과밀수용 등 불만 사항을 직접 적어 취재진을 향해 들어 보이고 있다.[연합] |
지난 6일에는 동부구치소 사태와 관련해 최초로 국가배상 청구 소장이 접수됐는데요. 법무법인 청의 곽준호 변호사가 재소자 4명에게 권한을 위임 받은 가족들을 대리해 배상 소송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현재 1인당 1000만원씩 총 4000만원을 청구하기로 했고요. 그는 “국가 배상을 통해 배상금을 많이 받아내겠다는 게 아니다. 구치소 안에서 감염된 사람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이해받기 위해 진행하는 소송”이라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이어 “구치소의 수용자들은 철저히 통제된 생활 속에서 교도관들이 하라는 대로 행동하다 감염된 사례”라며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아 ‘무죄 추정 원칙’이 적용돼야 할 수용자들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자신의 방어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국가배상 소송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우려 섞인 시선이 있습니다. 서울 광진구에 거주하는 20대 대학생 이모 씨는 “감염된 사람들의 피해를 부정하진 않지만, 적법한 구속 과정을 통해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며 “배상하는 과정이 논란에 휩싸이면 교도 행정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감염 확산’과 ‘정부의 조치’ 사이의 관계를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피해 정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법무부와 구치소가 얼마나 자료를 협조할 지 미지수”라며 “방역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정부가 해당 과실을 온전히 인정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치소의 질서 유지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구치소의 실질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봐야 한다”며 “한정된 예산 속에서 어렵게 수많은 수용자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지원의 한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이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사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메르스 사태 당시 격리된 사람들이 국가배상을 청구한 전례가 있는데요. 이에 대해 법원은 감염병과 정부 조치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습니다.
“첫 확진자 발생 이후 법무부와 구치소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힘을 받을까요, 아니면 “현실적인 교도 행정 과정상 어쩔수 없는 부분이었다”는 주장에 무게가 더 실릴까요. 구치소 국가배상 소송에 대해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한 주였습니다.
ra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