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 #K씨는 지난 달 초 페이스북에서 낯선 여성으로부터 호감 메시지를 받았다. 대화창을 카카오톡으로 옮기자던 그녀는 이내 은밀한 영상통화를 제안했다. 영상통화 시작도 잠시, 그녀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확장자명이 ‘apk’로 된 파일 설치를 권했다. 다시 시작된 영상통화에서 K씨의 주요부위와 얼굴이 노출되자, 그녀의 태도는 돌변했다. 영상을 지인에게 유포하겠다며 당장 150만원을 송금하라고 협박했다. 영상통화 2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로맨스’를 가장한 사이버 사기에 우는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외출 여건이 제한되자, 이를 틈타 범죄도 성행한다. 경찰에 수사를 요청해도, 대부분 중국에 서버를 둔 업체로 제재와 처벌마저 쉽지 않다. 피해자가 실제라고 믿는 여성도 사진과 영상을 도용한 ‘자료’에 불과하다.
몸캠피싱 피해 카페에 올라온 협박 사례. |
K씨가 당한 범죄 유형은 ‘몸캠 피싱’이다. 얼굴과 신체 주요부위가 노출된 영상을 주변에 알리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사이버 범죄 유형이다. 이들은 악성코드가 숨겨진 파일을 설치하도록 유도해, 전화번호부와 사진 등 개인정보를 복사한다. 사회적 관계 파탄을 우려한 피해자들은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억대까지 돈을 뜯긴다. 피해자의 99%가 남성으로 알려졌다.
‘몸캠 피싱 피해자 모임’ 카페에는 더 이상 보낼 돈이 없다고 하자, 대포폰을 만드는 데 명의를 팔라며 한 불법 통신업체에 찾아가라고 협박한 사례도 볼 수 있다. 이들은 한 번 꼬리를 물면 갖은 수를 써서라도 돈을 뜯어내는 악질 범죄라는 게 보안업계 중론이다.
신종 수법도 아니지만, 피해자는 매년 늘어난다. 대검찰청 조사에 따르면 몸캠 피싱 관련 범죄 적발 건수는 증가하고 있다. 2015년 102건에서 2019년 1800여 건으로 5년 만에 약 18배 급증했다. 피해액은 2016년 8억7400만원에서 2019년 55억2900만원으로, 3년 만에 약 6.3배 늘었다.
이는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신고접수를 한 기반으로 집계된 수치다. 피해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고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다수다. 디지털 성범죄 대응업계는 하루 피해자만 500여명, 연간 피해금액은 약 4000억원으로 추정한다. 지난해는 코로나19 여파로 관련 피해가 더 늘었을 것이라 보고 있다.
범죄업체는 미리 준비된 영상을 마치 실시간 영상인 듯 보여준다. 피해자에게 “화면이 잘 안나온다” “목소리가 안들린다” 등의 이유로 별도의 파일을 설치하도록 유도한다. 압축된 형태의 zip, rar 파일 등 apk파일이 주로 악성코드를 심는 데 이용된다.
최근에는 apk 확장자명의 파일 형태 이외에 다양한 확장자명의 파일로 배포 되고 있다. 이를 클릭하는 순간 휴대전화 내 전화번호부, 사진 등 주요 정보가 상대방에게 넘어간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채팅에서 누군가 음란 행위를 유도한다면 몸캠 피싱부터 의심해야 한다”며 “당했다면 경찰에 즉각 신고하고 악성 앱을 제거하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또 “금액을 주면 계속 요구하는 게 범죄집단의 패턴인 만큼 섣불리 행동하기보다 전문업체나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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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겨냥한 SNS 로맨스 사기 범죄도 있다. 이성에게 연인처럼 접근, 금전을 뜯어내는 ‘로맨스 스캠’이다. SNS 및 이메일 등 온라인으로 접근해 호감을 표시하고 외모와 재력 등으로 신뢰를 형성한 뒤 금전을 요구하는 수법이다.
이들의 수법은 동일하다. SNS를 통해 이성에게 다가가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수개월 이상 메신저 연락을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는다.“제 스타일입니다” “한국 가면 결혼하자” “한국에 곧 들어가면 함께 하고 싶다”며 고백을 늘어놓는다. 이후 특정 시점이 지나면 자신의 난처한 상황을 늘어놓으며 돈을 요구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로맨스 스캠에는 국제 택배가 흔한 수법으로 사용된다. 남성은 갖가지 고백과 호감표현을 하며 종래에는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해 묻는다. 이어 선물을 보낼테니 특정 앱 설치를 유도하고,국제택배에 붙는 비용으로 수백만원을 요구한다. 피해 사례에 따르면 대개 200만~400만원 사이 금액대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개 엔지니어 등 전문성이 강한 직업 종사자임을 밝히며 검증을 어렵게 한다.
로맨스 스캠을 당한 뒤 후유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피해 카페에는 “매일 상대해 주었던 성실하고 다정한 사랑 표현을 어리석게도 믿었다”며 “앞으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걱정에 우울하다”는 등 후유증을 하소연 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형법에 로맨스 스캠이나 ‘결혼빙자사기’를 별도로 처벌하고 있지 않다. 대신 사기죄를 적용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지난 해 9월 로맨스 스캠 조직에 가담해 피해자들로부터 1억3000만원 가량을 뜯어낸 20대 외국인이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국내에선 로맨스 스캠에 대한 공식 피해 통계는 없는 실정이다. 업계는 여성 피해사례도 매해 늘어나고 있다고 추정한다. 사이버 범죄 대응 업계 관계자는 “로맨스 스캠은 거의 100% SNS를 통해 이뤄진다”며 “특히 외국인 친구 요청이라면 받지 않는 게 가장 좋다. 인증하기 위해 자료나 사진을 보내주는 데 이마저도 대부분 해킹을 통해 도용한 정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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