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데스크칼럼] ‘정인이 사건’과 체벌 금지 선언
뉴스종합| 2021-01-14 11:42

1년 전 일이다. 지난해 이맘때 초등학생인 아이들 앞에서 체벌 금지 선언을 했다. 여러 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체벌의 효과 없음을 몸소 체험했고, 아이들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둘째아이가 “체벌도 아동학대”라며 입을 삐죽거릴 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훈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가끔씩 매를 들었던 모습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렇게 지난날의 반성과 함께 앞으로 체벌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건만 요즘도 가끔 매를 떠올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맞벌이와 육아’라는 치열한 전선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는 아이들과 생활하며 매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거짓말이거나 성인군자일 것이다. 아이들과 실랑이 과정에서 체벌 금지 선언을 뒤집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행히 체벌 금지 선언을 번복하는 상황은 모면했지만 체벌의 필요성과 관련해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느낌이다.

연초부터 ‘정인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적지 않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어린 생명을 그렇게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악마라는 비난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검찰이 살인죄를 묻겠다고 하니, 법원의 판단을 지켜볼 일이다.

정인이 사건을 보면서 아이들에 대한 체벌을 다시금 생각해본 부모가 적지 않을 것이다. 비교할 수도 없는 사건이지만 훈육이라는 이유의 체벌 역시 아이들에 가해지는 폭력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한 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몇 년 전 아이가 학교에서 시험을 봤는데, 부정행위를 했다는 소식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집안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매를 들었다. 같은 반 친구들을 속였고, 선생님을 속였고, 부모를 속였기 때문에 손바닥을 맞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하면 다시는 부정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급한 바람도 담겨 있었다. 훈육 차원에서 시작된 일이 커져 버렸다. 약한 체벌이라 생각했지만 아이가 아빠에게 손바닥을 맞았다는 사실을 일기에 썼고,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동학대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였다. 선생님의 전화에 약간 놀라긴 했지만, 취지와 상황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린 기억이 있다.

최근 민법이 개정되면서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는 것을 인정하는 조항이 삭제됐다. 그동안 체벌을 훈육으로 합리화하는 데 악용되던 조항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정인이 사건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관련한 법률안도 마련되고 있으며, 아동학대 방지 시스템 작동의 보완작업도 진행 중이다. 그 외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동 인권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 확대와 함께 아이를 둔 부모로서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행했던 체벌에 대해서도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우리는 순진무구함과 폭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이지만 폭력의 종류를 선택할 권한은 우리에게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에 대한 폭력은 최소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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