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설, 색다른 풍경] 나홀로 설에…“아흔 넘은 할머니, 연휴 지나 뵈려고요”[촉!]
뉴스종합| 2021-02-10 09:40

[123rf]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대학에 진학하면서 나고 자란 제주를 떠나 서울로 온 직장인 김모(32·서대문구)씨. 김씨는 서울 살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명절 귀성을 포기했다. 정부에서 설 연휴 기간 거주지가 다른 경우 가족도 5인 이상 만나는 것을 금지한 데다 부모님과 할머니께 행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파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명절에는 항상 본가에 갔다. 홀로 맞는 설은 처음”이라며 “‘아흔 넘으신 할머니를 앞으로 뵐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명절에만 찾아오는 손자를 기다렸을 텐데 서운하지는 않으실까’ 등의 생각을 하면 당장이라도 다시 고향으로 가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전국의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를 설 연휴가 끝나는 오는 14일까지 연장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에 따라 직계 가족이더라도 거주지가 다른 경우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된다. 방역 수칙을 위반하는 경우 집주인에게 최대 300만원, 방문한 가족에게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에 따라 1인 가구들은 민족 최대 명절 설을 ‘나홀로’ 보내게 됐다. 통계청에서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0년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에서 10가구 중 3가구(30.2%·2019년 기준)에서 ‘나 혼자’ 살고 있었다. 연령별로는 전체 1인 가구 중 20대가 18.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30대(16.8%) ▷50대(16.3%) ▷60대(15.2%)가 뒤를 이었다.

본가를 떠나 홀로 지내는 2030세대들은 대부분 4일간 쓸쓸한 설 연휴를 맞이하게 됐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권모(27) 씨의 고향은 경북 예천이다. 부모님과 손위 형제를 포함해 4인 가족이지만 방역 협조 차원에서 귀성을 미루기로 했다.

권씨는 “부모님이 먼저 내려오지 말라고 하셨다”며 “친가에서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코로나19로 건너뛴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본가까지 길이 밀리면 버스로 4~5시간 오래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 걱정스럽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남해안에 거주하는 회사원 김모(27·서울 관악구) 씨도 같은 이유로 귀성을 포기했다. 김씨는 “주로 기차나 비행기를 이용하는데 밀폐된 대중교통을 타고 내려가는 게 무섭다”며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지 않을 3월 초쯤에나 고향에 방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홀로 맞는 설을 원망하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쉬어 가는 연휴를 보낼 계획이다. 김씨는 “바이러스가 가족을 피해 가는 건 아니니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대규모 이동이 코로나19 예방에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해 이동을 자제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 집에 있을지 또래 친구 2~3명과 집에서 조촐하게 만날지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9일 오전 서울역이 이용객으로 붐비고 있다. [연합]

취준생 권씨는 “혼자 보내는 설은 처음이지만 코로나19로 지난 1년간 이미 크리스마스, 신정 등 많은 기념일을 혼자 보내서 쓸쓸하기보다는 익숙하다”며 “명절 직후에 면접 일정이 잡혀 준비하며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연휴 중 하루는 혼자 도예 공방에 가고 다른 날들은 별다른 계획이 없다는 직장인 김씨도 “자취 경력이 있어 명절이라고 해도 혼자 밥 해 먹고 집에서 머무를 수 있다”고 했다.

가족과 만남을 포기한 이들이지만 5인 이상 집합 금지에 대한 일부 반발도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취준생 권씨는 “지난 1년간 일상생활에 크고 작은 제약이 있던 만큼 설 연휴 가족을 보러 가는 사람들을 이기적이라고 욕하기는 힘들 것 같다”며 “코로나19 전에는 친척들과 피서도 같이 가곤 했는데 친척끼리 유대감이 사라지면 코로나 끝나도 잘 안 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씨도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거나 손을 잘 씻지 않는 등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데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과 섞일 수 있으니 아무래도 만남을 자제하는 게 공익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설의 상징성을 생각했을 때 귀성을 택한 이들을 비판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고령의 어르신들도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나홀로 설’을 맞이하기로 굳은 결심을 했다. 강원 강릉시에 거주하는 최재철(84)씨는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아들과 손주들의 귀성을 만류했다. 최씨는 “손자를 못 봐 매우 서운하지만 화상 전화라도 하면서 서운함을 달래고 참고 견디겠다”며 “코로나19로 인한 더 큰 화를 면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보고 싶은 마음을)참으면서 좋은 날을 기대해야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이모(71) 씨는 경북 포항시에 계신 홀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경기 지역에 흩어져 사는 자녀 내외들은 이번 연휴에 시간차를 두고 방문하기로 했지만 정작 이씨는 어머니를 뵈러 가지 못하게 됐다. 그는 “딸과 손주들이 전부 수도권에 사는데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괜히 코로나19 전파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설명했다.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 어르신들의 올해 설은 더욱 적적해질 것으로 보인다. 경북 안동시에 거주하는 70대 최모 씨는 10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늘 혼자 보내던 설이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찾는 사람조차 없어, 더욱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면서도 “시청 직원이 전보다는 덜 찾아오지만 어제(9일)는 떡국 떡 등 음식가지와 마스크, 손 소독제 등을 들고 찾아왔다”고 했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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