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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라면·스낵쟁이’라 부른 ‘신라면 신화’ 신춘호 농심 회장 별세…향년 92세
뉴스종합| 2021-03-28 11:27
농심 창업주인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신 회장은 1965년 농심을 창업해 신라면과 짜파게티, 새우깡 등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다. 사진은 1982년 사발면 출시 시식회의 중인 신 회장(가운데)의 모습.[농심]

[헤럴드경제] ‘신라면 신화’를 일구며 ‘라면왕’으로 불린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영면에 들었다. 향년 92세.

지난 27일 농심은 “신 회장이 이날 오전 3시 38분께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최근 노환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농심 그룹 부회장은 지난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에 대해 “몸이 안 좋으시고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고 언급한 바 있다.

1930년 울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5년 농심을 창업한 이후 56년 동안 회사를 이끌어왔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이다.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고 신 명예회장을 도와 제과 사업을 시작했다가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고 당시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끈 것에 주목해 농심을 창업했다.

창업 당시 신 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며 “따라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한다. 이런 제품이라면 우리의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며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라면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심 창업주인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농심은 “신 회장이 이날 오전 3시 38분께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1965년 농심을 창업해 신라면과 짜파게티, 새우깡 등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다. 사진은 1980년 신 회장의 유럽 출장 당시 모습. [연합]

1965년 롯데공업이란 이름으로 롯데라면을 출시했을 당시 신 명예회장이 라면 출시를 강력히 반대하자 사명을 롯데공업에서 농심으로 바꿨다. 당시 일로 두 형제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별세할 때까지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신 회장은 ‘농심라면(1975년)’을 시작으로 ‘너구리(1982년)’, ‘짜파게티(1984년)’, ‘신라면(1986년)’ 등 다수의 인기 라면 제품을 개발했다.

신라면과 짜파게티는 각각 현재 국내 라면 시장에서 점유율 1,2위를 달리는 제품이다.

농심의 지난해 라면 매출은 2조868억원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전 세계 100여국에 수출되고 있는 신라면의 수출액은 4400억원을 넘겼다.

고인은 라면 이외에도 1971년 우리나라 최초의 스낵인 ‘새우깡’을 개발했다. 신 회장은 새우깡 개발 당시 “맨땅에서 시작하자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적 재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독려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식품업계에서 신라면이나 새우깡 등 대표 히트 상품의 이름을 직접 고안했던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농심에 따르면 신춘호 회장의 마지막 작품은 지난해 10월 출시된 ‘옥수수깡’이다.

그는 “원재료를 강조한 새우깡, 감자깡, 고구마깡이 있고 이 제품도 다르지 않으니 옥수수깡이 좋겠다”고 말했다.

27일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신춘호 농심 회장의 빈소. [연합]

농심은 “고인은 자신을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 정신을 주문하고는 했다”고 소개했다.

신 회장은 1992년까지 대표이사 사장을 맡다가 농심이 그룹 체제로 전환하면서 그룹 회장직을 맡아왔고, 별세 이틀 전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되지 않으면서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완전히 물러났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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