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정권 나팔수 되거나 “좌파”라 공격받거나…유럽 공영방송 수난시대
뉴스종합| 2021-04-11 07:08
[123rf]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유럽 내 많은 국가들의 공영방송이 수난을 겪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이 자리잡은 국가에선 정부가 공영방송을 정권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폭넓은 언론의 자유가 허용되는 서유럽 국가에서는 ‘포퓰리즘’이나 극우 정치 세력 등을 중심으로 공영방송이 기득권 세력이나 진보적인 목소리만을 대표한다는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감염병 정보와 봉쇄 관련 사실에 대한 보도를 책임지고 있는 공영방송들은 정부의 코로나 대책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협박을 받거나 물리적 공격을 받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공영방송을 정권 홍보 채널로 활용하는 권위주의 정권

동유럽 내 권위주의 정권들은 최근 공영방송 길들이기에 나선 모양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지난 2010년 처음 권력을 잡았을 때 국영 미디어 기관 MTVA를 정권 선전 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이후 선거가 있을 때마다 MTVA 고위 관계자들은 소속 기자들에게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집권 피데스당에 유리한 기사를 쏟아내라고 지시하는 등 노골적으로 정권 선전에 나서기도 했다.

우파 성향의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도 집권 후 헝가리의 사례를 그대로 따랐다.

여당인 ‘법과 정의(PiS)’는 지난 2015년 집권 후 공영 TV 방송국인 TVP를 정권의 입맛에 맞춰 변화시켰다.

TVP는 우파 성향의 집권 여당에 맞춰 성소수자의 권리를 억압하는 움직임을 옹호했다. 여기에 지난 2019년 괴한의 흉기에 찔려 사망했던 파벨 아다모비치 그단스크 전 시장이 재임했을 때, 성소수자와 유대인 등 사회적 소수세력에 대한 관용을 주창해온 그를 악마화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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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모비치 전 시장은 두다 대통령과 집권 PiS의 반대파로 알려졌다.

폴란드 법원은 아다모비치 전 시장의 암살에 TVP의 악의적 보도가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손해배상을 할 것을 명령했지만, TVP는 지금까지도 이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있다.

반대 세력 ‘가짜 뉴스’라 비하…예산 무기로 압박도

동유럽에서 공영방송의 위기가 정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면, 서유럽 국가에서는 극단주의 세력의 주장에 동조하는 ‘포퓰리즘’ 정당과 극우 정당 등의 공격에 따른 위협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2016년 불거진 난민 사태 당시 반(反) 이민 시위대와 국수주의 정당들은 공영방송인 ZDF와 ARD를 ‘뤼겐프레세(Lügenpresse, 가짜언론)’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페터 프라이 ZDF 보도국장은 “공영방송을 뤼겐프레세라고 주장하며 가해지는 공격은 잠잠해진 상황”이라면서도 “공영방송의 시각이 좌파에 편향돼 있다느 시각은 과거 동독 지역 등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유럽 국가의 공영방송은 포퓰리즘 성향의 정당과 주정부, 비판론자들의 공격으로 정부 예산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ZDF와 ARD에 대한 지원금 인상이 보수 성향이 강한 옛 동독 지역 작센-안할트주에 의해 저지되기도 했다. 당시 작센-안할트주는 공영방송이 동성애자의 권리 강화 등의 진보적 주제에 편향돼 있고, 과거 서독 지역에 밀집한 대도시와 관련된 내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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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문제는 스웨덴과 네덜란드 등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이다.

코로나19로 공영방송 신뢰도 ↑…물리적 공격 악화 가려져

최근 맹위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영방송에 대한 시청률과 전반적인 신뢰도는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확진자와 사망자 수 관련 정보와 방역 대책 등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공영방송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확대되고 폭력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극단주의 집단의 공영방송에 대한 위협을 도리어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는 지적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라트비아 공영방송 관례자는 “지난 6개월간 공영방송 소속 기자들에 대한 폭력 위협은 급증했다”고 말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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