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왜곡·변형·강렬한 색채 속 ‘80년대 우리 이야기’
라이프| 2021-04-12 11:42
권영로, 익명의 초상, 종이에 유채49×51cm, 1993
송주섭作, 세대, 캔버스에 유채, 1982.
김은주, 무제, 종이에 콩테, 79×110cm,1990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미술은 민중미술이 전부일까. 사회참여적 성격이 강한 민중미술 말고도, 당시 한국 미술을 구성했던 ‘형상미술’에 대한 전시가 열린다. 부산시립미술관(관장 기혜경)은 부산미술계를 조명하는 기획전 ‘거대한 일상:지층의 역전’을 개최한다.

형상미술은 단색화로 대표되는 1970년대의 추상적이고 관념화된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했다. 동시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새로운 ‘형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미술 경향이다.

동아미술제와 중앙미술대전 같은 민간기관에서 개최한 민전을 중심으로 구체화 됐다. 신구상회화, 형상미술, 신형상미술 등 다양한 용어로 호명되지만 공통 특징은 강렬한 색감, 인체에 대한 색다른 묘사, 욕망의 표현, 일상에 대한 주목 등으로 기존 추상회화나 구상미술과 차별된다.

여기에 부산의 형상미술은 개인적 체험, 인간 실존의 문제, 일상성이라는 키워드가 더해진다. 전시는 이들 키워드를 주제로 4개 섹션에서 펼쳐진다. 먼저 ‘현실의 표정’에서는 당시 우리가 마주했던 현실의 구체적 이미지와 시대에 대한 고민이 등장한다. 송주섭 작가의 ‘세대’(1982)는 권위적 정권의 인권탄압과 민주주의 말살의 참상을 음울하고 괴기스런 표정의 인물군상으로 표현했다.

두 번 째 섹션인 ‘표현의 회복’은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맥락에 놓여있다. 시대의 정치적·사회적 상황은 개인의 체험적 진술에 따라 달라진다. 김은주 작가의 ‘무제’(1990)는 프레임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인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연필의 구도자’라는 수식어처럼 강력한 필선과 재료의 물성이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한다.

세 번 째 섹션인 ‘뒤틀린 욕망’은 혼란한 시대의 초상이다. 섹슈얼리티와 극한의 욕망, 그로테스크한 묘사는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자본중심으로 편재된 사회속에서 황폐해진 개인의 삶을 투영한다. 권영로 작가의 ‘익명의 초상’(1993)은 한껏 뒤틀려 있다. 배는 부풀어 터질듯 하고 머리는 그림의 구석에 박혀 그 존재가 희미하다. 욕망의 ‘추함’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마지막 섹션인 ‘격랑의 시대’는 일상과 인간이 주로 등장한다. 세상에 대한 반항심과 저항감 그리고 개개인의 애환, 슬픔, 반성, 분노, 연민, 웃음 등 섬세한 감수성을 통해 일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1980년대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 26명의 작품 120여 점과 1980년대 한국미술계를 아우르는 아카이브는 부산미술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부족함이 없다. 기혜경 관장은 “지역미술사 조명을 통해 1980년대 한국미술사를 재고하려 했다. ‘지금·여기 우리의 이야기’를 ‘새로운 형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형상미술은 민중미술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8월 22일까지 이어지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전예약으로만 관람 가능하다.

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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