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라이프칼럼] 묘생에서 얻는 교훈
뉴스종합| 2021-04-27 11:42

강원도 홍천 산골에 살면서 고양이를 들여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전적으로 쥐 때문이었다. 집 안팎에서 도발하는 ‘쥐와의 전쟁’으로 우리 가족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우군이 필요했다. 애완동물이 아닌 ‘쥐 잘 잡는’ 고양이 말이다.

지난 2013년 겨울부터 집과 농장 주변을 자기 영역 삼아 돌아다니는 ‘들냥이(들고양이)’를 대상으로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들냥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미끼(사료)’를 놓아둔 것. 그중 가장 잘 따르는 흰 들냥이가 있어 사료 외에 간식까지 주면서 쥐 토벌 임무를 맡겼다. 하지만 배고픔을 면한 고양이는 쥐를 잡기보다는 집 주변을 어질러 놓기만 했다. 한 번 야단을 쳤더니 제 발로 나가버렸다.

포기하지 않고 2015년 겨울까지 ‘들냥이 길들이기’를 계속했다. ‘식(사료)’에 더해 ‘숙(고양이집)’까지 제공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주인에게 순종하는 개와 달리, 자유분방한 들냥이는 얄밉게도 ‘먹튀’만을 반복했다. 결국 몇 년간에 걸친 들냥이 길들이기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배부른 구속보다 배고픈 자유를 추구하는 묘생에서 교훈도 얻었다.

2016년 6월의 어느 날,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아내가 ‘집냥이(집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얻어왔다. 밖에서 키우되 밤에는 고양이집에 넣어 보호하고 낮에는 집 주변에서 마음껏 뛰놀게 했다. 아내와 두 딸은 깜찍한 새끼고양이에 열광했다. ‘아라’라는 예쁜 이름도 지어줬다. 그러나 함께한 시간은 딱 일주일뿐이었다. 집 주변을 배회하던 포악한 들냥이에게 해코지를 당해 숨진 채 발견된 것. 자유로운 고양이의 삶 또한 살벌한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놓여 있다는 걸 실감했다.

지금 우리 가족의 유일한 집냥이 ‘크림이’는 2017년 가을에 인연을 맺었다. 막 젖을 뗀 초기에는 창고에서 돌보다가 제법 큰 다음에는 집 현관 쪽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포악한 들냥이들의 위협이 다시 시작됐다. 밤에 잠을 자다가도 고양이들의 날카로운 싸움 소리에 놀라 맨발로 뛰쳐나가 침입자를 쫒아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포악한 적과의 반복되는 전쟁 속에서 집냥이 크림이는 툭하면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되곤 했다. 서러움에 흘러내리는 고양이의 눈물도 이때 보았다.

하지만 이런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이젠 제법 여유 있는 어른고양이로 성장했다. 수컷인지라 얻어맞을 땐 맞더라도 여기저기 자유롭게 싸돌아다닌다. 맷집도 늘었고 비슷한 덩치의 상대와는 팽팽하게 맞선다. 온통 상처투성이라 어릴 적 미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골에선 거의 집집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운다. 아무래도 고양이보다는 개가 더 많다. 개는 없어서는 안 될 파수꾼 역할을 한다. 고양이는 쥐와 뱀 퇴치에 한몫 단단히 한다. 둘 다 밖에서 키워도 개와 달리, 고양이에겐 목줄을 맬 수 없다. 목줄에 매인 개보다는 고양이의 삶이 더 낫다고 여겨지는 건 바로 자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자유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때론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자유로운 묘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영역을 침범하는 외부의 적과 싸워 물리쳐야 한다.

고양이와 자유, 그리고 그 자유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에 이르기까지 묘생은 결코 가볍지 않은 교훈을 남긴다. 인생에 있어서도, 국가존립에 있어서도....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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