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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일깨우는 여행 기념품, 터키 카펫·주얼리가 품은 추억
라이프| 2021-05-05 12:04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터키 에게해 보드룸성으로 가다가 문득 마주친 해변시장통 젊은 가게주인의 미소가 아름다워 발길을 멈춘 다음 내 집 거실과 어울릴 만 한 카펫을 산다. 거실에 걸어 놓은지 어언 4년. 몇년이 지나도 그 카펫는 나의 터키 남서부 여행의 추억을 고스란히 재생한다. 기념품은 내 심신을 일깨운다.

보드룸의 청년 카펫 상인

아피온, 이스파르타를 여행했다면 돌궐식 한약재, 장미오일에서 그 때 기억을 되살릴 수 있겠다. 터키 여행의 대표적인 기념품으로는 달콤하고 쫀득한 맛이 일품인 터키시 딜라이트 – 로쿰(Lokum)과 액운을 막아준다는 악마의 눈 나사르 본주(Nazar boncuğu), 미용과 건강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올리브오일과 장미 오일, 터키의 진짜 명품으로 손꼽히는 터키 대표 수공예품 카펫과 주얼리가 있다.

터키의 다양한 전통 수공예품들은 뛰어난 품질과 시대를 아우르는 디자인으로 예로부터 세계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아왔다. 3500년의 역사를 가진 터키 전통 카펫은 이중 매듭의 직조 방식으로 짜여 아름다운 문양과 남다른 견고함을 자랑한다. 화려한 원석에 장인들의 섬세한 기술이 더해진 터키의 주얼리는 비잔틴 시대와 오스만 제국을 거쳐 크게 발달했으며 오늘날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터키 사람이라면 카펫 위에서 태어나 카펫 위에서 죽는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터키인들의 인생과 카펫은 떼려야 뗄 수 없이 가깝다. 카펫은 동쪽 페르시아 사산조페르시아(카자흐스탄)에서 소아시아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물론 오스만제국의 드넓은 강역이다.

9세기초 신라 흥덕왕은 자기 무덤에 서아시아 무인석상을 세울 정도로 서역사람들을 좋아했지만, 카펫수입이 범람하자,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당시 돌궐(터키)은 지금의 소아시아를 차지하기 전이고, 지금의 카자흐스탄과 이란 주변에서 비잔틴제국(동로마) 쪽으로 서진하던 중이었다. 지금은 터키가 세계 1위 카펫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터키에서 카펫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은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이다. 지붕을 갖춘 실내 재래시장 중 가장 큰 규모인 그랜드 바자르는 현지어로 ‘카파르차르쉬(Kapalıçarşı)’라고 불리는데, 1461년 문을 열어 오늘날까지 세계 최대, 세계 최고 시장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 이곳에서 몇년전 우리나라 삼성이 주최한 세계 아마추어 수영대회가 열렸다.

오스만 제국 황실의 카펫을 만들었던 헤레케(Hereke)산 카펫은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히며 현지인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의 시선을 끈다.

터키 헤레케(Hereke) 지역은 마을로 이스탄불에서 6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해안마을로, 이곳의 카펫 공방은 오스만 제국 시대부터 실크, 양모, 면, 금사, 은사 등을 골고루 수놓은 최고급 카펫을 생산했다. 오스만 제국 황실은 1841년 헤레케에 최초의 카펫 공방이 세운 뒤 제국 최고의 예술가와 카펫 직공을 모아 고품질의 러그와 독특한 패턴의 대형 카펫을 생산했다. 1850년대에는 오스만 제국의 제31대 술탄 압둘메지드(Abdulmejid)가 보스포루스(Bosporus) 해협에 건설한 새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çe Sarayı)을 위해 가장 좋은 실크 카펫을 만들어 배치했다. 오늘날까지도 궁전을 방문하면 여전히 160년의 세월을 자랑하는 오래된 카펫이 궁전의 메인 홀과 방을 장식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120m2의 거대한 크기와 선명한 문양은 명품 카펫의 진가를 톡톡히 보여준다.

이스탄불 돌마바흐체궁 입구. 내부 카펫 등 보물들의 촬영은 금지돼 있다.

터키의 카펫의 명성은 높은 내구성과 견고함에서 출발한다. 지오르데스(Ghiordes) 매듭이라고도 불리는 독특한 이중 매듭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매듭을 한 번만 짓는 페르시아 카펫보다 튼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개의 날실에 씨실을 교차시켜 대칭구조의 매듭을 만들어 고정하는 일이 터키 카펫 직조의 첫걸음이다. 염색한 양모로 짠 실을 사용하며, 지역에 따라 목화실이나 비단을 쓰기도 하는 등의 차이가 있다. 까는 것 만 아니라 장식용 걸개 카펫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 최초의 카펫은 러시아의 고고학자 세르게이 루덴코(Sergei Rudenko)가 1949년 카자흐스탄의 파지리크 고분에서 발견한 파지리크 러그(Pazirik Rug) 조각이다. 기원전 3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주 에르미타 박물관(St. Petersburg Hermitage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아나톨리아의 지역의 터키 카펫은 13세기 셀주크 튀르크(Seljuk Turks)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18개의 러그 조각들이다. 이 카펫들은 여러 꽃과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패턴을 가지고 있다. 아랍문자를 직선을 이용해 각지게 표현한 ‘쿠픽(Kufic)’을 카펫의 가장 자리를 두르는 패턴으로 사용하는 방식 또한 이 시기 셀주크 카펫의 큰 특징이다.

터키 보석제품

터키에서는 터키석이 나지 않는다. 이 푸른 원석의 생산지는 이집트가 있는 서아시아 지역으로, 터키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터키의 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하지만 터키는 터키석 없이도 세계 주얼리 시장에서의 입지가 탄탄한 나라다. 세계 5대 주얼리 생산국 중 하나이자 세계 상위 1, 2위를 다투는 주얼리 수출국이며, 터키 내 주얼리 산업 종사자만 약 25만 명이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에서 가장 많은 상점은 바로 보석 전문점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금과 은을 비롯한 각종 보석류의 무역 또한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가장 명망이 높았던 곳은 보석을 거래하던 베데스텐(Bedesten)이다. 베데스텐은 15세기 초 오스만 건축 양식을 따른 일종의 쇼핑몰이다. 건물 내외부에 물건을 사고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었고, 밤이 되면 출입구를 봉쇄해 귀한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터키 주얼리의 중심지인 이스탄불에는 터키 전역에서 온 수많은 도매상과 보석 용품점, 이색적인 주얼리 숍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100여 개나 되는 보석 전문점들이 화려한 조명 아래로 반짝이는 보석 상품들을 진열해두고 있는데, 천정이나 벽 등 모든 공간을 활용하기 때문에 마치 전시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터키 바자르

터키 주얼리는 보석 공예 장인들을 통해 전수된 고유의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다. 금속을 산화시켜 제품에 자체적인 음영을 주는 방식으로 디테일을 더하는 것도 터키 주얼리만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독특한 제작 방식 중 하나이다. 보석 공예 장인들은 전통적으로 아나톨리아(Anatolia) 지방에 살았던 아르메니아(Armenia)인들의 후손이다. 노아의 방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르메니아고원에 위치했던 우라루트(Urarut) 왕국은 주물과 단조 관련 기술을 발명했는데, 이 기술은 오늘날까지도 주얼리 제작에 쓰이고 있다.

터키 주얼리의 오랜 역사는 신석기 시대에서 출발한다. 터키의 고대 장신구는 지리적으로 비옥했던 터키 남동부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며, 돌이나 동물의 뼈, 조개껍데기 등을 재료로 사용했다. 물론 당시는 투르크가 아닌 메소포타미아 선진기술 민족들이 살았을 것이고 지금의 터키 민족은 고구려 옆에 있다가 서진한 돌궐계와 토착족의 혼혈이다.

오스만 황실의 궁전 내부에는 제국 최고의 주얼리 생산소가 있었는데, 술탄이 직접 고용한 보석 공예 장인만 90명 이상이었다. 이곳은 술탄과 그의 하렘들, 고위 인사들을 위한 선물용 주얼리만을 따로 취급했다.

금세공

터키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금 수요가 높은 국가다. 이탈리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양의 금을 전 세계로 수출한다. 기원전 9000년경 터키에서 금이 최초로 발견되었고, 금을 가공한 장식품과 장신구의 사용은 기원전 3000년 경으로 추정된다. 고대 터키에서 금은 화폐의 역할을 했고, 그랜드 바자르에서도 임대료를 금으로 지불하는 등 특별한 교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터키는 특별한 은 가공 기술로도 유명하다. 일반적인 은 제품은 높은 비율의 은에 구리를 합금하는데, 터키의 은에는 구리 대신 카드뮴이 쓰여 좀 더 가볍고 변색에 강하다. 톱 카피 궁전 박물관(Topkapi Palace Museum)에는 16세기부터 수집된 2000여 점의 은 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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