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고용계약도 없는 하청 노동자와 단협하라는 중노위
뉴스종합| 2021-06-04 11:09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택배기사들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CJ대한통운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함으로써 향후 택배시장에 상당한 갈등과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판정이 나오자마자 경영계는 “유사한 취지의 교섭 요구 폭증 등 노사관계에 부정적 파장을 끼칠 것”이라며 행정소송 등 적극적인 대응을 예고했고, 노동계는 “택배업계는 물론 다른 업계의 간접고용 근로자 문제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중노위 판정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중노위 결정의 요지는 업무의 실질적인 지배 여부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와 계약관계가 없다. 대리점과 배송계약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중노위는 “사실상 CJ대한통운이 실질적 사용자이니 하청근로자가 요구하는 단체교섭에 응하라”고 판정했다.

위장 도급이나 불법 파견의 꼼수를 쓰지 않은 원청업체에 하청근로자와 단체교섭을 하라는 판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보험설계사나 방문판매원 등 대리점을 매개로 한 특수고용직은 물론 원·하청관계가 일반화된 조선·철강·중공업 등 제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택배 유통을 넘어 도급 형태의 원·하청 용역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얘기다.

이를 의식한 중노위는 즉각 “CJ대한통운과 관련한 개별 사안을 다룬 것일 뿐, 원청의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를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취지는 아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문 열어놓고 들어가지 말라는 것과 같다. 이미 불씨는 던져졌고 또 다른 법정다툼을 통해 결론지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막상 단체협상이 시작돼도 문제다. 민노총의 영향력 하에 있는 택배노조는 주 5일 근무, 휴가권 보장, 심야배송 선택권 등을 주장한다. 배송 건수가 수입과 직결되는 현실을 볼 때 이는 곧 수입의 감소를 의미한다. 그게 아니라면 배송비 인상이다. 이미 과로의 원인이 되는 상품분류인원을 늘린다고 택배비는 인상됐다. 그런데도 추가적인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파업은 당연한 수순이다. 대리점은 엄연한 사업자에서 그저 인력대행업체로 전락한다. 비대면산업 성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이번 사안의 출발은 택배기사들의 잇따른 과로사였다. 택배시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는 전제는 옳다. 문제는 해결 방안이다. 해법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문제의 범위만 넓힌다면 옳은 방향이라고 보기 어렵다. 심지어 근로계약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단체교섭 대상이라고 본 대법원 판례와도 배치된다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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