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김빛나의 현장에서]명품이 뭐라고
뉴스종합| 2021-06-14 11:42

“선생님은 가방이나 옷 중에 명품 없어요?” 고등학교 학원강사로 일하는 지인이 학생에게 들은 말이다. 질문을 한 학생은 톰브라운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자신의 카디건이 100만원이 넘는다며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설명하는 학생을 보고 그는 생각이 많아졌다. 최근 들어 이런 식으로 학생에게 명품을 배우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들 집이 부자가 아닌데도 이런 분위기”라며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라도 경조사용 명품가방을 사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성인부터 중·고등학생까지 모두가 명품에 열광하고 있다. 이른 아침 백화점 명품 매장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는 기사도 많이 나왔다. 실제 줄 서 있는 시민 대부분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연차를 내거나 휴일을 활용해 명품 매장을 방문한다.

일반적인 해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명품시장을 키웠다는 것이다. 백화점은 그중에서도 젊은 세대의 명품 구매가 늘고 있다고 진단한다. 실제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명품 매출 중 20·30대 구매 비중은 50.7%로, 처음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연령대별로 비교했을 때 20대는 10.9%, 30대는 39.8%를 기록했다. 2018년과 2019년에 20·30대 비중이 모두 49.3%였다. 롯데백화점도 20·30대 구매 비중이 최근 3년 동안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보복소비만으로 명품 인기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특히 중·고교생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명품 유행이 그렇다. 앞선 사례뿐만 아니라 설문조사에서도 청소년 명품 사랑이 드러나고 있다. 스마트학생복에서 실시한 청소년 명품 소비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358명 중 절반가량이 ‘명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앞으로 명품을 살 의향이 있느냐’응 설문에는 응답자의 76%가 ‘구매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학생들이 이토록 명품에 관심 많은 이유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몇 안 되는 수단이어서다. 학생들은 검은색 머리에 교복을 입고 생활한다. 머리스타일도 엇비슷한데 그렇다고 교복을 과감하게 바꿀 순 없다. 유일하게 다른 친구와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 교복 위에 걸치는 카디건이나 지갑·신발이다. 여기에 좋아하는 아이돌들이 명품 브랜드옷을 입은 모습을 보며 명품에 대한 선망을 키웠다.

명품 인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젊은 세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중·고등학교 시절이 그랬듯 직장인들이 현실적으로 평소 튀는 옷차림이나 머리스타일을 하기란 어렵다. 직장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주변 동료에게 관심받을 만한 패션아이템이 바로 명품 가방·향수·신발 등이다. 월급을 모아 한방에 지르는 ‘플렉스(FLEX) 문화’를 과연 철없는 사람들의 행동으로만 볼 수 있을까. 명품으로 개성을 표현한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 명품이라는 걸 증명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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