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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큘의 귀환’ 김준수, “‘드라큘라’는 뮤지컬 배우로 부끄럽지 않게 해준 작품”
라이프| 2021-06-15 08:58
2014년 초연 이후 올해로 네 번째 '드라큘라' 무대에 오르고 있는 김준수는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머리로 다시 돌아와 '샤큘'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김준수는 "네 번째 시즌은 초연과는 또 다른 부담감이 있다"며 "같은 작품을 하며 안주하면 감동을 줄 수 없어 매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무대에 오른다"고 말했다. [오디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대 위 십자가가 붉게 물들면 ‘주문 같은 대사’가 울려 퍼진다. ‘이모르디테 노스페라투(Immordite nosferatu, 불멸의 악마), 이모르디테 노스페라투.’ 신(神)을 비웃으며 ‘영생의 삶’을 살아온 드라큘라 백작은 한없이 굽은 등으로 무겁게 걸음을 옮긴다. 거죽 밖에 남지 않아 핏줄이 툭툭 불거진 손끝, 그 아래로 소름끼치도록 길게 자란 손톱은 저주받은 삶의 길이를 증명한다. 핏빛 노래가 한 번 더 울리면 ‘드라큘라’는 가장 짜릿한 장면을 연출한다. 인간의 피로 다시 ‘젊음’을 찾은 ‘불멸의 악마’의 등장. 붉은 머리의 ‘월드베스트 샤큘(시아준수+드라큘라)’이 돌아왔다.

개막 전 출연 배우의 코로나19 확진으로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기간을 가진 만큼 다시 선 무대는 더 소중하다. 김준수는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정말로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수는 2014년 초연 이후 네 번째 시즌을 맞은 올해에도 ‘드라큘라’(8월 1일까지·블루스퀘어)로 무대에 섰다. 뮤지컬 계의 ‘월드스타’이자, 강력한 티켓 파워를 발휘해온 만큼 개막과 함께 ‘명성’은 고스란히 확인됐다. 한 좌석씩 뛰어앉기로 막을 올린 공연은 관객들이 가득 메웠고, 객석에선 김준수의 얼굴을 가까이 보기 위한 팬들이 망원경을 든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뮤지컬 배우 김준수의 존재감 때문이다.

[씨제스 제공]

‘드라큘라’와 함께 해온 네 번의 시즌 동안 그는 자신만의 상징성을 만들었다. ‘빨간 머리’는 김준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빨간 머리를 유지하는 것이 쉽진 않아요. 물이 잘 빠져 일주일에 한 번씩 염색해야 하고, 베개에 물이 들어 수건을 매일 깔고 자야하기도 하고요. (관객들이) 워낙 좋아해주셨기 때문에, 이 머리를 유지하는 것이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의 이름을 붙여 ‘샤큘’, ‘드라큘라 장인’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김준수에게도 “‘드라큘라’는 가장 많은 회차를 한 뮤지컬”이자 “4연까지 올린 유일한 작품”이다. 이미 많은 작품을 통해 흥행배우로의 이름값을 증명했지만, ‘드라큘라’는 뮤지컬 배우 김준수의 진가를 보여주는 작품이자, ‘인생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폭발적인 가창력, 관객을 압도하는 감정 연기, 의외의 지점에서 던지는 유머러스함 등 김준수의 장점을 한 무대에 담았다.

덕분에 ‘샤큘’의 무대를 향한 기대치가 높다. 그만큼 부담이 컸다고 한다. “‘샤큘’만이 할 수 있는 무대를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이다. “네 번의 시즌 동안 매번 좋은 반응이 있었지만, 같은 작품을 하는 만큼 안주하면 감동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하는 것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길이었다. “네 번째 시즌까지 하면 새로운 게 있을까 싶었는데, 이전엔 발견하지 못한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고, 새롭게 다가오는 점도 있더라고요.”

브램 스토커의 소설을 원작으로 2004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드라큘라는 400년간 한 사람(극중 미나)을 향한 사랑을 간직한 드라큘라의 러브스토리를 담았다. 김준수가 생각하는 작품의 매력도 여기에 있다. 그는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뮤지컬 ‘드라큘라’는 흡혈을 즐기고 사람을 해치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보단 일반적이지 않은 특별한 로맨스, 서툴지만 짐승 같은 사랑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씨제스 제공]

실재하지 않는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 김준수는 곳곳에 자기만의 장치를 숨겼다. “제스처, 손짓, 걸음걸이에서 보통의 인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블멸의 사랑’인 미나를 연기하는 상대 배우에 따라 연기와 대사에 변화를 주는 것도 ‘샤큘’만의 무기다. “예전에는 ‘이 대사 아니면 안돼’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는데 이번에는 어제, 오늘, 내일 공연의 대사에 변화를 주는 편이에요.” 객석에선 예상치 못한 애드리브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애드리브가 주로 나오는 곳은 드라큘라와 미나의 기차역 장면이다. “날 때부터 드라큘라가 아니었기에,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드라큘라도 지고지순한 사람이고, 인간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대목이라고 생각했어요. 가볍게 넘어가기도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라고 받아들였어요.”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선지 올해로 11년이 됐다. 동방신기로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누리던 한류스타에서 멤버들이 흩어진 이후 설 자리를 잃었을 때 만난 뮤지컬은 김준수에겐 심폐 소생기와 같았다. ‘모차르트’를 시작으로 ‘엘리자벳’의 죽음, ‘디셈버’의 지욱, ‘데스노트’의 엘, ‘디셈버’의 지욱, ‘드라큘라’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경계를 벗어난 초월적 존재, 판타지적 존재의 연기”는 김준수의 전매특허처럼 자리잡았다. 자신에게 딱 맞는 역할을 찾아내는 안목 역시 김준수가 뮤지컬 배우로 안착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사실 제겐 모든 캐릭터가 도전이었어요. ‘엘리자벳’의 죽음 역할을 맡았을 때나, ‘드라큘라’를 하게 됐을 때도 엄청 욕을 먹었어요. 개인적으로도 잘할 수 있을까 싶었고요. ‘데쓰노트’ L도 코어한 팬들이 많아 더더욱 건드리면 안될 것 같았거든요. 깨지더라도 해보자, 매번 도전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창작극도 적극적으로 임했던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어요. 모두 제가 잘 고른게 아니라 골랐던 작품이 잘 된 거죠. 항상 도전하는 마음이었어요.”

[오디컴퍼니 제공]

여러 작품 중에서도 ‘드라큘라’는 나름의 의미로 남아 있다. 그는 ‘드라큘라’를 “뮤지컬 배우라는 힘든 길에서 지름길로 안내해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11년 전에 뮤지컬로 배우라는 이름을 달았어요. 그때의 전 인생의 가장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졌어요. 첫 작품이었던 ‘모차르트!’를 만나 제2의 꿈을 꿔볼 수 있었죠. 제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 ‘모차르트!’였다면, ‘드라큘라’는 뮤지컬 배우라는 험난한 길을 지름길로 안내해준 작품, 뮤지컬 배우로서 부끄럽지 않게 해준 작품이에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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