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누구의 시선일까...‘초상화’를 읽다
라이프| 2021-06-21 11:04
초상화에는 수많은 의미가 숨어있다. ‘처녀 여왕’으로 불린 엘리자베스1세 영국여왕은 자신의 순수함을 통치의 권능으로 활용했다. 불사조 모양의 브로치는 처녀성과 재생을, 진주는 순수를 상징한다. 손에 든 붉은 장미는 튜더 왕가를 뜻한다. 런던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품.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다니엘 보이드, 무제 (TDHFTC), 2021, oil, acrylic, charcoal and archival glue on canvas, 130X189cm[국제갤러리 제공]
엘리자베스 페이튼, Tony Leung Chiu-Wai (Happy Together), 2021, Oil on board, 35.6 x 27.9 x 2.7cm ⓒTom Powel Imaging
엘리자베스 페이튼, Elizabeth, 2021, Oil on board, 35.6 x 27.9 x 2.7 cm, ⓒTom Powel Imaging [리안갤러리 제공]

“초상화는 가장 공감하기 쉽고 다가가기 쉬운 예술 장르이면서 또 가장 다면적이고 더 탐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장르다”

랩 맥기번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 큐레이터는 초상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초상화에는 시대상, 주인공의 상황,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 다층적 의미가 숨겨져 있다. 또한 작가의 세계관도 녹아있어 그 풍부한 맥락을 살펴보는 것이 바로 초상화 감상의 묘미다. 그럼에도 초상화는 국내 컬렉터의 선호장르는 아니다. 색다른 초상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현재 메이저 갤러리 두 곳과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500년전의 ‘셀피’ 영국국립초상화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의 소장품 78점을 선보이는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전을 개최한다. 양 기관의 협력으로 탄생한 이 전시는 500여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세계 역사와 문화에서 획을 그은 인물들만을 선별했다. ‘명성’, ‘권력’, ‘사랑과 상실’, ‘혁신’, ‘정체성과 자화상’이라는 다섯가지 키워드로 초상화가 갖는 다양한 의미를 살펴본다.

군주권을 지키기 위해 처녀여왕으로 남았던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초상엔 튜더왕가를 상징하는 장미와 순수를 뜻하는 진주, 처녀성과 재생의 불사조 브로치가 배치됐다. 초상을 통해 권위 강화를 꾀한 것이다. 세기의 사랑 혹은 불륜 커플인 허레이쇼 넬슨(1758-1805)과 에마 해밀턴(1765-1815)의 초상, ‘폭풍의 언덕’과 ‘제인에어’로 유명한 앤(1820-1849), 에밀리(1818-1848), 샬롯 브론테(1816-1855) 자매의 단체 초상도 흥미롭다. 초상화의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전시의 큰 축이라면, 초상화를 그린 작가의 스토리는 맛깔나는 고명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인 애나 윈터는 뉴요커의 모습을 핵심만 포착해 그려내는 알렉스 카츠가, 변화무쌍한 유선형 건축으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디지털 초상으로 구현했다. 8월 15일까지.

▶직관적이고 감성적 묘사 ‘엘리자베스 페이튼’=초상화가로 가장 핫한 작가 엘리자베스 페이튼(56)의 첫 한국전이 리안갤러리에서 열린다. 주변 지인과 유명인사, 역사적 인물들을 직관적이고도 감성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중매체에 실린 사진을 참고하지만, 이를 직관적이고 불명확하게 또한 일부러 아마추어 같은 방식으로 그려낸다. 전시작 중에는 영화 ‘해피투게더’의 주인공 양조위의 모습을 담은 ‘Tony Leung Chiu-Wai (Happy Together)’(2021)가 인상적이다. 애틋했지만 어긋났던, 순수하고 우울함 감정이 투명한 색감으로 살아난다.

작가는 단순한 선과 붓자국으로 인물을 묘사한다. 인물을 세밀하게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 자신의 시선을 담아낸다. 미국 노예제 폐지론자 프레드릭 더글라스, 작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 어시스턴트인 라라의 초상도 이같은 특징이 살아있다. 전시를 기획한 리안갤러리는 “초상화에서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오랜 시간 수많은 붓질로 만들어 낸 완벽한 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7월 31일까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도록 ‘다니엘 보이드’=호주작가 다니엘 보이드(39)의 개인전이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초상화전은 아니나, 애보리진(호주 원주민)인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고민을 인물화를 통해 전달한다. 전시에도 인물화가 상당수 나왔다.

‘무제(GGASOLIWPS)’에 그려진 젊은 남자의 인영은 작가의 증조부 해리 모스만이다. 1928년 세계 최대 산호초 지대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탐사에 끌려가 노예처럼 부려졌던, 참혹한 역사의 주인공이다. 또 다른 작품 ‘무제(TDHFTC)’는 작가 누이의 초상이다. 전통 춤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교회나 커뮤니티에서 소수민족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명분으로 전통 춤 공연이 많았는데, 이 과정에서 ‘보여주기식’으로 전락해 관람자가 원하는 ‘스테레오타입’을 연기하는 것을 포착했다.

다니엘 보이드는 수많은 점을 찍어 회화를 완성한다. 애보리진 특유의 공예 제작 스타일에서 차용한 것이다. 멀리서 보아야 형상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볼록하고 투명한 풀로 점을 찍는 것에 대해 “정보적 영역과 비 정보적 영역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어붙여 이해한다”며 숨어버린 역사에 대한 다른 시각을 촉구한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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