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데스크칼럼] 공정, ‘새로운 블랙’...능력주의, 과잉이냐 결여냐
뉴스종합| 2021-06-29 11:47

패션디자이너들은 다음 시즌의 유행색을 가리켜 ‘뉴블랙’, 즉 ‘새로운 검정’이라 한다는 말이 있다. 검정은 패션에서 어디에나, 어느 색과도 잘 어울려 가장 많이 쓰이는 색인데 시즌마다 이러한 역할을 할 만한 ‘유행색’ 혹은 ‘기본색’을 가리켜 “올해는 ○○색이 새로운 블랙”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선 “‘공정’이 새로운 블랙”이라고 할만하다. 여야 대권지지도 1위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 여야 합쳐 약 20명에 이르는 대권주자들이 모두 “불공정을 바로잡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이 어느 한 정치인이나 세력만의 모토가 아닌, 대세의 담론이 됐다는 말이다.

누구나 공정을 얘기하지만 함의도 맥락도 어느 하나같지 않다는 사실은 최근 ‘능력주의(Meritocracy·실력주의)’ 논쟁으로 드러났다. 정치권에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책 제목이자 지론인 ‘공정한 경쟁’으로, 사회적으로는 외국 학자의 저작인 ‘엘리트 세습’(대니얼 마코비츠)과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이 촉매제가 됐다.

‘능력주의’를 한마디로 말하면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합당한 사회적·경제적 보상’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해 뛰어난 자질을 갖춘 사람에게 마땅한 지위를 주고, 노력과 능력을 동원해 성과를 창출한 이에게 합당한 연봉과 승진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처럼 경쟁에 의해 능력주의가 더 많이 실현될수록 공정한 사회다. 이 대표 주장의 핵심이기도 하다.

‘엘리트 세습’의 저자인 대니얼 마코비츠는 이에 대해 반대편에 선다. 그에 따르면 이미 미국과 같은 현대사회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지위와 연봉이 결정되는 초고도 능력주의 사회다. 이는 매우 공정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개인의 능력과 자질, 심지어는 노력(성실성)까지도 ‘우연’과 ‘세습’이라는 불공정에 기초해 만들어진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내려받는 유전자의 조합은 물론이고 태교와 육아, 교육에 투입되는 자본의 크기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출발선이 같은 ‘공정한 경쟁’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산과 신분을 물려줬던 과거의 귀족과 달리 현대의 엘리트는 능력과 노력이라는 ‘인적 자본’을 세습하기 위해 자기가 가진 자원을 총동원한다. 그 결과는 중간숙련·관리직의 ‘공동화’로 인한 중산층의 붕괴와 직업·계층의 양극화다. 이렇듯 ‘공정한 능력주의’는 중하위층을 낙오되지 않기 위한 무자비한 생존게임에 내몰 뿐만 아니라 엘리트까지 인적 자본 세습을 위해서 개인을 완전히 소모시켜야 하는 불행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 주장의 요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입시부터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전환 사태를 거쳐 최근의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 채용까지 일련의 논란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공정’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하고 있다. 또 어떤 부문은 능력주의의 과잉으로, 어떤 부문은 능력주의의 결여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앞으로 250여일 남은 대선은 공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이 돼야 할 것이고, 주자들은 각자의 구체적인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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