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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의 떼죽음 몰고온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외 신간다이제스트
라이프| 2021-07-02 08:01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권내현 지음, 너머북스)=1556년 대구의 한 양반가의 가출사건을 통해 조선시대 상속제도의 변화를 살폈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실화의 시작은 장남노릇을 해야 할 유유가 가출하면서 시작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동생 유연이 집안대소사를 챙기게 됐다. 그런데 7년 뒤 채용규라는 인물이 유유라며 첩과 아들 정백을 데리고 들아온다. 의심쩍었지만 적극적인 자형과 유유의 아내 백씨 부인이 정백을 아들로 거둬들이자 일단 받아들인 유연은 진위여부를 가려달라고 대구부에 청원한다. 그런데 보석으로 재판을 받던 채용규가 실종되는 일이 벌어지고, 첩 춘수는 유연이 형의 자리를 뺏기위해 친형을 살해했다고 고발, 살인사건으로 비화한다. 유연은 살인, 그것도 강상죄를 적용받아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저자는 이 사건의 배후로 상속제의 변화를 주목한다.16세기 조선 사회의 양반가에선 관습적으로 장남이 자식 없이 죽으면 그의 부인이 총부로서 제사를 관리하고 가계 계승자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법적으론 그 권리를 장남의 남동생에게 부여, 관습과 제도의 모순이 충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시기 균분상속에도 가계 계승자에게 돌아가는 상속 몫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자형 이지의 사주와 백씨 부인이 침묵한 이유다. 저자는 장남 우대 상속으로의 변화를 경제력 하락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장자에 의한 가계 계승을 보장하면서 차남들도 일부 상속을 받게 해 장남 주변에 머물게함으로써 경제적 몰락을 억제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평가다. 일찌기 장자 상속을 택한 유럽과 비교한 점도 흥미롭다.

▶끝내주는 괴물들(알베르토 망겔 쓰고 그림, 김지연 옮김, 현대문학)=‘언어의 파수꾼’‘도서관의 돈 후안’이란 수식어가 붙는 작가이자 편집자, 비평가 앙게르로 망겔이 신화와 전설, 문학 속 독특한 캐릭터들을 탐색했다. 37명의 캐릭터 가운데는 어린 시절 서늘한 공포의 세계로 인도한 ‘빨간 모자’‘슈퍼맨’‘로빈슨 크루소’‘피카츄’ 등 친숙한 캐릭터도 있고, ‘햄릿’의 ‘거트루드’나 ‘호밀밭의 파수꾼’ 속 ‘피비’ 등 익숙한 문학 작품 속 캐릭터도 있다. 작가는 이들 캐릭터를 통해 문학과 종교, 신화, 대중문화 속 인류의 보편적 주제에 다가간다. 가령 드라큘라는 청소년들의 두려움과 노인들의 갈망이 빚은 상징으로 지금도 ‘트와일라잇’ 시리즈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로 이어지며 재탄생되고 ‘신드바드’와 ‘로빈슨 크루소의 여정’은 노마드 인간의 원조격인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로 거슬러올라간다. 또한 카지모도를 통해 인간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도 살핀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대체로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 작가는 오랜세월 인류와 함께 해온 괴물, 혹은 괴짜, 기이한 것들은 우리가 지닌 여러 가면 중 하나임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이들은 곧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들이며, 이들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로 해석된다.

▶데카메론 프로젝트(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인플루엔셜)=700년 전 흑사병이 돌던때, 사람들을 위로했던 ‘데카메론’을 재현, 코로나 팬데믹 시대 이야기의 힘을 담은 엔솔로지. 마거릿 애트우드의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외 작가 28인의 단편을 실었다. 애트우드의 작품은 ‘데카메론’의 형식을 차용한 SF 단편으로, 격리중인 지구인들을 도와주러 온 문어 모습의 외계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다.‘마스 룸’의 작가 레이철 쿠시너는 ‘빨강 가방을 든 여인’에서 전염병을 피해 모인 한 무리의 사람들 중 노르웨이의 소설가가 어떻게 자신의 아내를 만났는지 계층, 여성, 이민자 등 수많은 편견을 넘나들며 흥미롭게 풀어낸다. ‘브루클린’의 작가 콜럼 토빈이 쓴 ‘LA강 이야기’는 중년의 소설가가 봉쇄된 상황에서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유지하고 지키려는지 담담히 보여준다. 당대 최고의 작가 29명이 그려낸 짧은 소설은 불시에 닥친 재해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 격리됨으로써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등을 저마다의 독특한 스토리로 풀어냈다. 이 앤솔로지는 2020년 7월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단편들을 단행본으로 엮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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