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인생은 메달보다 값지다’… 도쿄 울린 ‘인생드라마’들
엔터테인먼트| 2021-07-28 09:58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인생을 뜨겁게 달구는 사람은 주변에 감동을 선사한다. 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이유는 숨겨진 노력과 땀, 눈물 덕이다. 논란 속에 2020 도쿄 올림픽이 개최됐다. 화려한 금메달의 주인공 못지 않게 주목받는 것은 남모를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 무대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도전기는 메달 색깔, 메달 유무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누군가는 암을 이겨냈고, 아킬레스건 파열 위기를 극복했으며, 백혈병도 눌렀고, 난민으로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서도 그곳에 섰다.

한국 태권도 인교돈이 27일 일본 마쿠하리 메세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80㎏ 초과급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혈액암 넘어선 인교돈= 인교돈은 올해 29살의 나이로 올림픽 무대에 처음 올랐다. 한국 태권도 대표 선수들 가운데서도 고참에 속한다. 선수 생명이 유독 짧은 종목인 탓에 인교돈은 27일 80㎏ 이상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긴 뒤 ‘다음 올림픽’을 묻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대신 그는 “준비한 것을 전부 쏟아내고 져서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고 말했다.

그가 늦은 나이에 올림픽 무대에 처음 선 것은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스물 두살때였던 2014년 림프종 수술을 받았다. 전이 속도가 빠른 림프종은 활동량이 많은 운동 선수에겐 치명적이다. 수술에 이은 항암치료는 참기 힘든 과정이었다. 머리카락이 빠졌고 구토가 찾아왔다. 병원은 입원 치료를 권했으나 그는 끝내 통원치료를 선택했다. 태권도가 전부인 그에게 연습은 삶 그 자체였던 탓이다.

기적같은 일이 생겼다. 항암치료를 받은지 1년여만에 병이 호전된 것이다. 2019년에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인교돈이 2년여 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이때문이다. 인교돈은 이같은 우려를 실력으로 반전시켰다. 지바그랑프리와 소피아 그랑프리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랭킹 2위까지 순위를 높였다. 올림픽 출전도 확정됐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한국 펜싱 여자 사브르 대표팀 주장이자 맏언니 김지연은 지난해 2월 아킬레스건이 완전히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회복이 쉽지 않고, 회복 되더라도 장애를 남길만큼 큰 부상이다. 선수생명이 아예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지연은 불굴의 의지로 부상을 극복했다. 뼈가 끊어져 나가는 고통을 감내하며 재활에 전념했다. 그에게 ‘올림픽 1년 연기’는 기회였다. 재활과 연습에 필요한 시간을 번 것이다. 김지연은 여자 사브르 16강에서 아쉽게 패했지만 단체전에 다시 한번 도전한다.

▶박수받은 꼴찌= 예선에서 꼴찌를 하고도 갈채를 받은 선수도 있다. 여자 기계체조에 출전한 자메이카의 다누시아 프랜시스는 예선 최하위로 경기를 마쳤다. 다누시아가 예선 꼴찌를 기록한 것은 연기 시간이 짧아서다. 다누시아는 예선 이틀을 앞두고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걷기조차 힘든 심각한 부상으로 일반인이라면 바로 수술을 해야했다. 의사들도 경기 불참을 권했지만 다누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다누시아는 25일 여자 기계체조 예선에서 부상을 입은 왼쪽 무릎에 붕대를 감은 채 이단평행봉 연기에 나섰지만 11초밖에 연기를 지속할 수 없었다. 그는 연기를 마친 뒤 웃으며 경기장에서 내려왔다. 심판진은 다누시아에게 수행점수에서 9.033이란 높은 점수를 줬다. 그의 투지를 점수로 환산한 셈이다. 자메이카 대표팀은 “우리는 다누시아의 용기가 그 어떤 것보다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란대표였던 알리자데는 지난해 독일로 망명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사진=도쿄 올림픽위원회]

▶난민 태권도 선수 알리자데= 도쿄올림픽 난민팀 대표로 태권도에 출전한 키미아 알리자데는 이란 출신이다. 그는 18세였던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57㎏급에 출전해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란 사상 최초의 여성 메달리스트가 된 것이다. 이란 정부는 이를 ‘여성인권 신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알리자데는 2020년 1월 유럽으로 전지훈련을 떠나 망명을 선언했다. 그가 망명을 선택한 이유는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기 싫다”는 이유였다. 그는 지난해 독일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는 전방십자인대 파열 등으로 인해 모두 6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알리아데는 “나는 6번의 수술을 했다. 매 순간 나 스스로 ‘할 수 있다’, ‘회복할 수 있다’고 외쳤다. 내 목표가 메달만은 아니다”며 “태권도는 내 힘든 시절을 이겨내게 해줬다”고 말했다.

이케에 리카코는 백혈병을 이겨내고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사진=도쿄올림픽위원회]

▶백혈병 이겨낸 이케에 리카코= 일본의 20세 여자 수영 스타 이케에 리카코는 백혈병을 극복한 사례다. 그는 2016년 리우 대회와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6개의 금메달을 따낸 스타였다. 그러나 2019년 2월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약 10개월간 입원 과정을 거쳐 같은해 12월에 퇴원했다. 항바이러스제를 매일 복용하느라 체중이 15㎏ 넘게 빠지기도 했다. 당시엔 그가 수영을 다시 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케에는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기적이라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그는 올림픽 출전이 확정된 뒤 “매우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 지금 행복하다”고 말했다.

진정한 올림픽 정신은 '금메달'이 아니라 '어떠한 난관도 넘어서는 인간의 의지'에 있지 않을까.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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