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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할 때의 뇌, 공부할 때와 같다
라이프| 2021-09-03 08:00
“비디오 게임을 하는 동안 뇌 속에서 일어나는 기전을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살펴볼 때, 게임을 하는 활동 자체는 곧 학습과정과 다름이 없다. 학습은 뇌 속에서 신경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그 학습 과정을 통해서 변화된 뇌가 곧 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게 된다.”(‘게임하는 뇌’에서)

그동안 논란을 불러온 청소년의 심야 게임을 금지하는 강제적 셧다운제가 10년 만에 폐지되고 청소년이 스스로 게임시간을 정하는 선택제로 바뀌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일상과 가상의 경계가 희미해져가는 상황에서 놀이와 게임,학습이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커진 결과다.

여기엔 뇌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뇌과학의 영향도 있다. 게임이 치매 및 주의력결핍장애 치료 및 스트레스와 우울증 치료, 학습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보고 되고 있다

신경학적으로 볼 때, 게임을 하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은 학습과정과 같다.

뇌인지과학 분야의 권위자인 이경민 서울대 의대 교수와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는 ‘게임하는 뇌’(몽스북)를 통해 게임을 하는 동안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뇌의 인지기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연구결과를 토대로 차근차근 풀어준다.

뇌 속에는 뇌 전체 용적을 차지할 만큼 무수히 많은 신경 다발, 즉 연결망들이 있다. 이 연결망을 백질(white matter)이라 부르는데, 작은 신경들이 밀접하게 닿아있다. 시냅스라 부르는 이 연결부위는 어떤 행동을 하거나 훈련을 할 때 이 활동과 관련된 시냅스들이 새로 만들어진다. 새로운 경험 혹은 지식을 많이 축적하면 할수록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뇌 안의 시냅스가 많아진다,

비디오 게임을 할 때 뇌의 행동을 일으키는 신경망, 정확히는 시냅스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점수를 얻기 위해 뇌가 집중하면 할수록 몰두한 활동과 관련된 신경 세포 연결이 더 강한 자극을 받고, 이는 신경 효율성의 증가로 이어진다. 다만 과도하게 특정활동만 집중적으로 하면 관련된 신경 연결 효율성은 증가하지만 다른 활동과 관련된 신경효율성은 잃어버릴 수 있다. 따라서 과도하거나 편향된 게임 이용으로 기회 비용을 지불하지만 않는다면, 평소에 쓰지 않던 신경세포의 연결을 활성화해 재미도 얻고, 머리도 좋아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게임중독의 여지는 있지만 저자에 따르면 과장된 측면이 있다. 게임중인 사람의 뇌에서도 중독물질인 도파민이 30~50%증가하지만 이는 일상생활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할 때 분비되는 양과 비슷하거나 적다. 마약을 투입했을 때 도파민 분비량이 1200% 증가하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같은 선상에서 중독을 비교하는 건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신경망을 변화시키는 것을 격려하는 주체는 바로 보상체계와 도파민이다. 도파민이 없다면 뇌에서는 학습이 일어나지 않거나 학습 효율이 아주 떨어지는 상태가 된다.

게임이 인지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저자는 인지기능이 주의력, 기억력, 언어능력, 시공간 지각 능력, 사회성 정서, 운동능력, 감각 능력, 집행기능 등의 상호작용임을 강조하며, 게임이 어떤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한 예로, 2015년 폴란드 과학아카데미 심리학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액션게임과 전략게임 이용자는 비이용자에 비해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전환하는 멀티태스킹에서 훨씬 전환능력이 뛰어났다. 일반적으로 여러가지 일을 하면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때보다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게임을 하면 여러가지 일을 할 때에도 집중력을 유지하고 주의력을 필요한 곳에만 쏟는 능력이 생긴다. 게임을 시작하는 나이가 어릴수록 전환 능력이 더 많이 발전한다는 연구도 있다. 뇌신경 가소성의 결과다.

이런 전환능력은 모든 게임 장르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몸을 사용하는 엑서게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경도 인지 장애 노인 집단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 집단에게 엑서 게임을 하게 한 후 전과 후 집행기능을 비교한 결과, 전환 기능 향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신체활동에 집중된 엑서 게임이 집행기능을 직접적으로 동원하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는 게임의 쟝르마다 인지기능에 미치는 영향이 다름을 말해준다.

흔히 액션게임을 하면 충동적이 될 거라는 부정적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 ‘후르츠 닌자’라는 모바일 액션 게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액션 게임 이용자가 비게임 이용자보다 더 충동적이지 않았다.그런가하면 퍼즐게임을 한 집단은 행동을 순간적으로 중지하는 행동억제능력이 높게 나타났다.

정보를 가공하는 활동인 작업기억 역시 게임을 한 집단이 하지 않은 집단보다 뛰어났다. 또한 어려운 게임을 한 쪽이 쉬운 게임보다 더 많이 향상되고 지속됐다. 노인들이 주사위를 던져 말을 움직이는 단순한 게임이더라도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것에 비해 인지 자극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추론과 분석 등 고위 인지기능도 게임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을까?

미국의 한 심리학 연구팀이 의사결정이나 판단력, 문제 해결, 위험 부담에 미치는 비디오 게임의 영향을 연구했다. 대학생 228명은 각자 30분씩 액션 게임을 하고 나서 인지기능 측정 도구인 도박 과제와 위험 과제를 수행했다, 그 결과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만 게임을 했음에도 참여자들은 의사 결정과 문제 해결 능력에서 유의한 향상을 보였다.

아동을 위한 연구결과도 눈여겨 볼 만하다.

날아오르는 과일과 폭탄 중 과일만 베어야 하는 '후르츠 닌자' 게임을 미취학 아동들에게 3주 동안 하게 했을 때 게임을 하지 않고 태블릿 색칠 공부만 한 아동에 비해 추론 능력이 더 많이 향상됐다. 게임 내 폭탄에 대해 억제 반응을 보임으로써 억제 기능을 지속적으로 훈련한 아동들은 추론 능력이 함께 발달한 것이다. 억제 기능과 추론 기능 발달이 상관 관계가 있다는 점도 밝혀진 셈이다.

그렇다면 운동과 게임 중 어느 것이 더 아동의 인지 기능 발달에 도움이 될까?

신체활동과 인지활동을 강도에 따라 4개 그룹으로 분류· 실험한 결과, 고강도 신체활동과 저강도 인지활동을 한 그룹에서만 집행기능 증진효과가 나타났다. 즉 아동기에는 신체 활동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책은 게임이 쟝르와 나이에 따라 인지기능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슬기로운 게임생활의 길을 제시한다.

이윤미 기자

게임하는 뇌/이경민 외 지음/몽스북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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