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특별기고] 9·19 군사합의 후 3년, ‘안정’ 넘어 ‘평화’로
뉴스종합| 2021-09-30 11:37

9·19 남북군사합의 체결 이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베트남 하노이 협상 결렬 이후 긴 교착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군사합의가 이룬 가장 큰 성과는 우선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없었다는 점이다.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와 시범적 감시초소(GP) 철수가 이뤄졌고, 비무장지대(DMZ)에서 처음으로 유해 발굴을 진행할 수 있었다. 국민은 DMZ 평화의길과 판문점 견학을 통해 평화를 체험하고 있다. 9·19 군사합의가 평화의 씨앗으로서는 의미가 있다고 할 만하다.

역사적으로 군사합의를 토대로 평화를 이룬 사례는 중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종교적·민족적·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중동전쟁을 4차례나 치른 적대적 관계이며 지금도 긴장과 충돌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순간의 오해로 전쟁이 재발할 수 있다고 판단한 양국은 4차 중동전쟁 직후 두 차례 군사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시나이협정’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담겼다. ‘동 협정은 최종적 평화협정이라고 인식되지 않으며, 최종적이고 공정하며 항구적인 평화를 향한 첫걸음을 구성한다.’ 첫걸음이라는 문구가 상징하듯 양국은 완충지대 설정 등 조치를 통해 우발적 충돌과 기습 선제공격을 되도록 예방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평화의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양국은 총 90차례 합의를 위반하며 협정 파기까지 가는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하지만 양측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극단적인 파국은 피했다. 초보적 수준의 평화장치인 시나이협정은 4년간 우여곡절 끝에 1979년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평화협정 체결로 진전됐다. 현재 중동 내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아랍국가 중 명실상부한 최강국인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된 평화협정이 양국 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해왔다고 봐야 한다.

남북 간 9·19 군사합의 체결만으로 한반도평화를 완전히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북 군사 당국은 지상·해상·공중 접경지역에서 완충지대를 설정해 우발적 군사충돌 가능성을 차단했다. 적어도 현재까지 군사적 충돌 사례는 전무하다. 이를 두고 과소평가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과거 한반도에서 군사적 갈등과 충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차이다.

JSA 비무장화와 GP 시범 철수 이후 DMZ는 평화의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화살머리고지에서 전사한 참전용사의 유해가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광경은 전쟁의 상흔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해에서는 추가 어장을 확보할 수 있게 돼 서해 5도 어업인의 어획량과 수익증가에 이바지하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연이어 감행했던 몇 년 전을 생각하면 지금과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물론 평화를 단 하나의 합의 문서로 한꺼번에 이룰 수는 없으며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합의의 실천이 유지돼야 하고, 군사적 안정이 신뢰로, 신뢰를 넘어 평화의 제도화로 나아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도 간단치 않다. 중동의 시나이협정 사례와 같이 한반도에서도 9·19 군사합의가 안정적 신뢰와 평화의 제도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더 큰 도약의 기회를 모색하는 노력을 멈출 수 없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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