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60대의 윤석화·70대의 정동환·80대의 이순재…다시 무대로
라이프| 2021-10-05 09:18

올해로 연기 인생 65주년을 맞은 배우 이순재가 ‘리어왕’에 도전하며 “이 무대는 필생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세 배우가 보낸 무대 위에서의 시간을 합치면 도합 164년. 60대의 윤석화, 70대의 정동환, 80대의 이순재다. 거장 배우들이 나란히 무대로 돌아온다. 연기 경력 최소 47년에서 최고 65년. 아무리 오랜 시간을 연기해도 배우들의 눈엔 열정과 설렘으로 빛이 난다.

올해로 연기 인생 65주년을 맞은 배우 이순재(88)는 ‘리어왕’(31일~11월 21일·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도전한다. 그는 최근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도 연기할 기회가 생기겠지만, 이 무대는 필생의 가장 마지막 중요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숭고하고 압도적‘이라는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순재는 모든 것을 소유한 절대적 존재에서 한순간에 ’미치광이 노인‘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리어왕‘ 역을 연기한다. 그는 “나이 팔십의 할아버지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은 별로 없다”며 “누가 ‘이제 더 하고 싶은 작품이 뭐냐‘고 묻길래 늙은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은 셰익스피어 리어가 아니겠내고 했다. 개인적 소신을 표한 것이 공론화가 돼 해 한 번 해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올해로 연기 인생 65주년을 맞은 배우 이순재가 ‘리어왕’에 도전하며 “이 무대는 필생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특히 “이전엔 ’맥베스‘와 같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했지만, 그 때만 해도 이해하지 못했다”며 “이 나이쯤 되니 이 역할도 이해할 수 있고, 연령 조건도 맞으니 최선으로 다해볼 생각이다”라고 했다.

작품은 원전 그대로 무대에 옮겼다. 러닝타임은 3시간 20분이나 된다. 이순재는 단독 캐스트로 23회 공연에 모두 출연한다. 매일 여덟 시간씩 연습을 이어가며 무대에 설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순재는 “욕심이 나고 해볼 만한 역할이지만 사실은 만용이라 생각한다”며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구사다. 비유나 문학적 수식이 많아 배우가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내용 전달이 안 된다. 자다가도 대사가 튀어나올 정도여야 해서 자기 전에 대사를 한 대목씩 연습해본다”고 말했다. 체력 관리도 필수다. 노배우는 “싱글 캐스트라는 점이 걱정되기도 해서 집사람에게 보약을 준비하라고 했다”며 웃었다.

오만함에 눈이 가려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는 리어의 어리석음이 초래하는 갈등과 혼란은 지금 이 시대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순재는 “작품의 핵심은 절대 권력자가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면서 깨닫게 되는 진리에 있다”며 “(작품은) 백성들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군림했던 통치자의 모순을 자탄한다. 리더는 자기 위치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밑에서 어렵고 힘들고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바라봐야 한다는 메시지가 작품의 마디마디에 있다”고 말했다. 연극은 셰익스피어 전문가 이현우 순천향대 교수가 연출을 맡았고, 배우 소유진, 이연희를 비롯해 서울대 극예술 동문을 주축으로 설립된 관악극회에서 활동하는 아나운서 출신 오정연이 함께 한다.

연기 경력 52년차의 정동환은 4년 만에 다시 한 번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무대에 선다. [극단 피악 제공]

연기 경력 52년차. 정동환(72)은 4년 만에 다시 한 번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2~31일까지·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로 무대에 선다. 작품의 공연 시간은 관객도 지칠 만큼의 긴 여정이다. 1부 180분, 2부 160분을 더하니 총 340분. 무려 여섯 시간에 달한다. 70대가 돼 다시 한 번 이 작품과 만난 정동환은 이번에도 1인 5역을 맡아 위대한 도전을 이어간다. 연극은 극단 피악의 20주년 기념 작품이기도 하다.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대표 소설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니콜라이 1세 반란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있던 젊은 시절 작가가 감옥에서 만난 한 청년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실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2017년 공연에선 ‘고전의 무대화에 이상적인 표본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연출을 맡은 나진환 극단 피악 대표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극단 피악이 레퍼토리 극단으로 거듭나서 자생력을 키워가기 위한 하나의 실험이자 도전”이라며 “20년 동안 계속 지켜온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질문이 우리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신념을 무대에서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동환이 연기할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로 참여하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설명하는 작품 해설자 역할도 담당한다. 작품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장면은 1막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정동환이 20분을 쉬지 않고 이어가는 대심문관 독백신은 연극계에서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연기 인생 50주년을 앞둔 윤석화는 자신에게 “고향”과도 같은 산울림 소극장에서 무대에서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소극장 산울림 제공]

연기 인생 50주년을 앞둔 윤석화는 무대 위에서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윤석화 자신에게 “고향”과도 같은 산울림 소극장에서 선보일 윤석화 아카이브 ‘자화상Ⅰ’이다.

윤석화와 1988년 ‘하나를 위한 이중주’로 시작해 2004년 ‘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까지 16년간 산울림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산울림 소극장 관계자는 “윤석화는 산울림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으로 임영웅 연출을 비롯한 산울림 단원들과 동고동락하며 배우이자, 연출가, 번역가이자 무대감독이며 연극의 모든 것으로 존재하며 수많은 관객을 맞았다”고 말했다.

총 3부작으로 선보일 윤석화 아카이브의 첫 무대인 ‘자화상Ⅰ’에선 60대의 윤석화가 30대에 섰던 작품으로 돌아간다. 1988년 윤석화가 번역해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파니를 연기했던 ‘하나를 위한 이중주’, 1989년부터 이듬해까지 무대에 올린 임영웅 연출과의 첫 작업 ‘목소리’도 다시 선보인다. 소극장 산울림 측은 “전화기 한 대에 의존해 여배우 한 사람이 무대를 감당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이었다”며 “천하의 윤석화도 긴장하고 주저하게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장기 공연 신화를 이끈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배우 윤석화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전설적 공연”이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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