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최대 수혜국의 반란...‘反EU’ 기치든 동유럽 권위주의 정권
뉴스종합| 2021-10-15 12:16
폴란드 법원이 자국에서는 유럽연합(EU) 조약보다 폴란드 헌법이 우위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EU와 대립각을 세우자 폴란드 시민이 수도 바르샤바에 모여 “EU 탈퇴를 반대한다”고 외치고 있다(위쪽). 한 시민은 야로슬라브 카친스키 폴란드 집권 여당인 ‘법과 정의당’(PiS)의 지도자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을 나란히 둔 사진을 들어 여당을 독재 정권으로 표현했다. [로이터·AFP]

권위주의 진영이 정권을 잡은 폴란드와 헝가리가 유럽연합(EU)의 기본 가치인 ‘법치주의’에 지속적인 도발을 가하고 있다.

EU 탈퇴라는 극단적 선택지까지 꺼내든 이들 국가가 경제·정치적 통합은 물론 자유·평등·인권을 중시하는 가치 공동체로서 EU의 위상까지 위협하고 있다.

▶EU 가치 약화에 앞장선 폴란드·헝가리= 최근 폴란드 정부는 EU와 ‘사법 통제’ 논란을 두고 공방 중이다.

폴란드의 집권 ‘법과 정의당(PiS)’은 2018년부터 하원이 법관을 인선하는 위원회의 위원을 지명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여당이 주도하는 하원이 사법부를 대놓고 통제하겠다는 것이었다.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이 정책이 EU법을 위반했다며 제동을 걸었지만, 지난 7일 폴란드 헌법재판소는 EU의 조약이나 결정보다 국내법인 폴란드 헌법이 더 앞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으로 폴란드가 ‘폴렉시트(Polexit·폴란드의 EU 탈퇴)’에 한 발 더 다가갔다고 전문가는 평가했다.

동유럽 내 ‘극우 정권’으로 불리는 헝가리도 2010년 재연임에 성공한 이후 EU의 민주주의, 법치주의 요구가 헝가리 주권을 침해한다며 충돌을 빚고 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지난해 야당 성향의 라디오 방송국을 폐쇄하는 등 언론 탄압에 본격 나섰고, 지난해 11월에는 선거법을 개정해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다졌다. 이 밖에도 두 국가는 최근 성소수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함으로써 EU가 공유하는 인권적 가치까지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U 역시 회원국의 일탈 행위를 손놓고 바라만 보진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법적인 조치 이외에 보조금을 지렛대로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EU는 7500억유로(약 1040조원) 규모의 경제회복 기금과 이와 연계된 1조740억유로(약 1488조원)의 EU 장기 예산안(2021~2027년) 중 폴란드와 헝가리에 배정된 예산 지급을 중단한 상태다. 예산 배정의 조건으로 내건 ‘법치주의 존중’을 근거로 들어서다.

전문가 사이에선 한번 훼손된 EU와 폴란드·헝가리 간의 신뢰가 회복되기 힘들 수 있다는 걱정어린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피 폰슐레겔 유럽정책센터 분석가는 “국가에서 자유가 탄압되기 시작하면 되돌리기가 어렵다”며 “폴란드·헝가리가 법치주의·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존중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 신호”라고 말했다.

▶폴란드·헝가리, 알고보면 EU 최대 수혜국= EU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폴란드와 헝가리가 쉽사리 EU를 등지기 힘들 것이란 분석도 있다. 모순적이게도 양국이 회원국 중 EU의 최대 경제적 수혜국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폴란드는 EU로부터 125억유로(약 17조3000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회원국 중 1위다. 헝가리가 2018년 기준 62억9800만유로(약 8조6790억원)로 그 뒤를 이었다.

섣불리 EU 탈퇴를 결정할 경우 심각한 경제적 타격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실제로 폴란드·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 대부분은 EU를 가입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가입 이전과 비교했을 때 115%나 증가했다. 특히, 폴란드의 경우 지난 2018년도 자국 기업 수출품의 약 80%가 EU 회원국으로 흘러갔을 만큼 EU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폴란드·헝가리 양국 국민이 집권 세력의 반 EU 움직임에 거세게 저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2019년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폴란드 시민 71%, 헝가리 시민 65%가 “EU가 자국 경제를 강화했다”고 응답했다.

유혜정 기자

yooh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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