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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출 풀었지만…DSR 조기 시행 가닥에 실수요자 ‘혼란’
부동산| 2021-10-18 11:26

“전세자금 대출 못 받을까 봐 계약 서둘러 손해 본 세입자들은 무슨 죄인가요? 전세대출 안 나와서 월셋집으로 이사 간 사람들은요? 대출도 이제 이삿날과 정부 정책이 잘 맞아야 하는 로또가 돼버렸네요.”(30대 무주택자 A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책에 거리로 나앉게 생겼다. 급등하는 집값이 두려워 떠밀리듯 집을 샀다. 내년 2월이면 집에 들어갈 수 있고 드디어 전월세 걱정 안 하고 두 발 뻗고 잠들 수 있다고 기뻐했는데 참으로 안일한 생각이었다. 집을 산 이후 DSR 계산 시 산입되는 내용에 계속해서 변화가 생기더니 이젠 차주별 40%로 변경한단다. 하루아침에 줄어들어버릴 대출 잔액에, 차액은 사채를 가져다 써야 하나.”(청와대 청원글을 올린 B씨)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총량관리 규제에서 전세자금대출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주택시장 실수요자들은 졸여왔던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하루아침에 급변하는 정책에 혼란을 호소한다. 또한 DSR 규제 조기 강화가 유력해지면서 최근 주택 마련을 한 1주택자에게도 큰 공포로 다가서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은 ‘전세대출 관리방안’을 마련해 27일부터 시행한다. 전세대출을 새로 받는 대출자들은 지금처럼 전셋값의 8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임대차계약 갱신에 따른 전세대출에 대해서는 대출 한도를 ‘임차보증금(전셋값)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전세계약을 갱신할 때 전셋값이 2억원 올랐다면 2억원 내에서만 대출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NH농협은행은 중단했던 전세대출을 18일부터 재개하면서 이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또 신규 계약과 갱신 상관없이 전세대출은 반드시 잔금을 치르기 전에 신청을 끝내야 한다. 현재는 입주일과 주민등록전입일 중 빠른 날부터 3개월 이내면 대출 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27일부터는 전세계약서상 잔금 지급일 이전까지만 대출 신청이 가능하다. 또 내 집을 한 채 가진 1주택자들은 비대면 신청이 막히고 반드시 은행 창구에서만 전세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주택시장 실수요자들은 졸여왔던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하루아침에 급변하는 정책에 혼란을 호소한다. 일단은 주거 이전계획에 숨 쉴 틈이 생겨 반기는 분위기지만 다만 앞으로도 얼마든지 정책이 바뀔 수 있어 걱정이 크다.

서울에 사는 40대 C씨는 “제발 정책의 일관성을 좀 유지했으면 한다”면서 “실수요자 아우성이 나올 때 눈 깜짝 안 하다가 여론이 생각보다 심각해지자 정치적 이유로 말을 바꾼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시장에도 곧바로 신호를 줬다. 송파구의 한 현직 공인중개사는 “대통령이 전세대출을 규제하지 말라고 했으니 전셋값이 빠질 염려는 없어진 것 같다”면서 “대출 요인 말고, 이제는 수요공급에 의해서 가격이 움직일 것 같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금융 당국은 2023년 7월까지 해마다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던 ‘개인별 DSR 40%’ 규제의 적용 대상을 예정보다 앞당겨 시행하는 방안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30대 1주택자는 “올해 영끌해서 집 사길 잘했다”면서 “40%로 적용하면 이제 서울에서 영끌해서 집 사는 건 불가능할 것 같고,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급매물도 가끔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수요자의 대출 중단 사태를 막은 것에 대해선 평가하면서도 급격한 대출 조이기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제기했다. 대출 공급과 관리에 대한 근원적인 점검을 할 필요는 있지만 상환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 개인의 자금 융통을 규제하는 것이 금융의 본질 차원에서 합당한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주택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접근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집값과 전셋값이 급등해 대출 건수가 같아도 건당 대출금액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출 양과 증가속도를 보겠다는 정부의 접근법은 주택시장의 내부 속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결과”라며 “건당 대출액이 얼마나 올라가는지 등 질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 필요성을 증빙하는 과정에서 자금 필요시점과 공급시점의 격차가 생기는 등의 틈새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당장의 실수요자 구제와 별개로 가계대출 증가세는 계속해서 경계해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대출을 억죄는 것은 비합리적이지만 국가 전체로 봤을 때는 가계부채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인 것은 맞다”면서 “어찌 됐든 올해와 내년 집값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임대차시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경·김은희 기자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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