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구본혁의 현장에서] 韓 노벨상 수상 ‘조급함’부터 버리자
뉴스종합| 2021-10-20 11:33

2021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모두 결정됐다. 하지만 끝내 대한민국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24조원을 돌파하고 어느 때보다 기대감은 컸지만 또다시 빈손에 그쳤다. 과학강국 미국, 유럽, 일본은 물론 중국도 3명의 수상자를 배출했기에 더 비교됐다.

한국연구재단이 분석한 ‘노벨과학상 수상자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노벨과학상 수상자 77명은 평균 37.7세에 핵심 연구를 시작해 55.3세에 완성하고 69.1세에 수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연구 시작에서 수상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32년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연구환경은 어떨까. 장기 대형 연구가 쉽지 않은 국내 연구 풍토는 노벨과학상 수상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30년 이상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마련하고 과학자들의 처우 개선을 통해 연구 몰입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해마다 반복된다. 대다수의 국내 연구자들은 장기간 대형 연구과제보다는 3년 이내의 단기 소형 과제 수주에만 내몰려 장기적이고 창의적 연구는 사실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 연구과제는 거의 매년 정량평가를 받아야만 하는 실정이다. 특히 과학기술 논문(SCI) 한 편당 피인용 횟수는 하위권을 맴도는 등 질적인 성과는 지극히 미미하다. 한국이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단 한명도 내지 못하고 선진국 문턱에서 맴돌고 있는 것도 기초 원천기술에 제대로 된 장기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장은 “노벨과학상은 기초과학 연구의 목적이 될 수 없고, 세계적으로 우수한 연구성과가 축적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로 인식해야 한다”며 “노벨과학상을 받으려면 자연의 근원에 존재하는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거나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진보시키는 성과를 내야 하는데 기초과학에서 이런 연구는 단기간이 아닌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즉, 우리나라의 목표는 노벨상 수상이 아니라 그만큼 우수한 역량을 꾸준히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노벨상 수상을 위해 정부도 기초원천 분야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기초연구 지원예산은 2017년 1조2600억원에서 내년 2조5200억원으로, 2배 이상 늘렸다. 또 국가장학금부터 박사후 연구자, 신진 연구자, 창업 지원까지 청년 과학자의 생애 전 주기 지원책도 마련했다.

노벨상 수상 족집게로 통하는 정보분석 서비스기업 클래리베이트 에널리틱스는 노벨상 유력 후보 과학자로 2014년 유룡 KAIST 교수, 2017년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 지난해 현택환 서울대 교수, 올해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를 꼽은 바 있다. 이들의 연구성과가 조만간 빛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어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노벨상 수상을 위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구호만 반복할 것이 아니다. 장기적 관점의 기초 원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 환경 시스템을 구축하고 차분히 노벨상 수상을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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