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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 누리던 골프장, 변곡점 맞았다
엔터테인먼트| 2021-10-29 11:20
지난 2월 홀당 최고가액에 거래된 사우스스프링스CC의 시그니처홀 레이크코스 9번홀 전경. [사우스스프링스 홈페이지]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는 신용철(54) 씨는 사업목적 뿐 아니라 아내와 함께 밴드 등을 통해 골프모임도 자주 갖는 골프 애호가다. 신 씨는 “그린피가 평일 아침시간도 20만원을 훌쩍 넘고 김포, 포천 등 제법 거리가 있는 곳도 25만원에 육박한다. 주말에는 30만원대가 당연해졌다”며 “주말 그린피를 내고 치느니 지방에 1박2일로 가서 두번 라운드하고 35~40만원대를 낸다”고 말했다.

#기업체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K모 교수는 해당 기업이 제공하는 법인 주중회원권을 이용하고 있다. 그는 “골프장을 소유한 일부 기업은 임직원에게 제공하던 법인회원권을 회수했다. 개인회원권 보유자들이 부킹이 어려워지자 골프장 측에 불만을 제기해 나온 결정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일반 골퍼들 뿐 아니라 회원권 보유자들도 부킹난을 겪을 만큼 골프장은 여전히 입추의 여지가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 최대 수혜주로 뜬 골프 열기가 좀처럼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을 극성수기와 맞물리면서 골프장 회원권 가격과 그린피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예약 전쟁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코로나 특수로 몸값을 불린 골프장들은 ‘지금이 고점’이라는 시각과 ‘더 오를 것’이라는 상반된 인식 속에 거래 시장을 관망 중이다. 11월부터 시작될 ‘위드 코로나’ 시대가 골프산업의 변곡점이 될지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역대 최대 골프 호황 속에 골프장 회원권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20억원을 돌파했다.

초고가회원권의 대명사인 경기도 광주 이스트밸리 회원권이 이달 중순 20억원에 거래됐다. 황제 회원권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남부의 시세가 최근까지 19억원, 이스트밸리가 18억5000만원이었는데 이스트밸리가 20억 고지에 먼저 올랐다. 연초(14억2000만원) 대비 40%의 상승률이다. 2008년 6월 남부가 찍었던 21억5000만원 역대 최고점 탈환도 가시권이다.

골프장 가격도 넘치는 유동성과 부동산 경기 호황이 더해져 ‘홀당 100억’ 시대에 접어 들었다. 지난해 9월 골프클럽 안성Q가 홀당 78억원의 역대 최고가로 매각된 데 이어 사모펀드 운용사(PE)인 센트로이드가 지난 2월 BGF로부터 사우스스프링스CC를 홀당 95억원6000만원에 사들여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한화그룹은 골든베이GC를 시장에 내놓고 홀당 100억원을 희망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홀당 140억대의 수도권 골프장 매각 작업도 진행중”이라고 귀띔했다.

골프장 가격이 고점에 다다랐다는 인식 속에 매물 출회도 이어지고 있다. “팔 수 있을 때 팔자”는 얘기다. 올해 한라그룹이 스톤브릿지·카카오VX 컨소시엄에 세라지오 골프장을 매각했고 SM그룹의 옥스필드CC는 임페리얼레이크에 팔렸다. 웅진그룹의 렉스필드CC도 시장에 나와 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올 7월까지 마무리된 골프장 M&A 규모는 1조 800억원으로, 2019년 1조 1458억원으로 사상 첫 1조 원을 돌파한 후 3년 연속 1조원대를 기록했다.

골프장 M&A 분야 전문인 김기세 KS개발대표는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동안 투자처를 찾지 못한 사모펀드들이 값이 뛸 대로 뛴 골프장을 사들였다. 2~5년 정도 지나면 코로나19 전후로 사모펀드들이 샀던 골프장들이 매물로 나올텐데 투자비 회수가 가능할지 다소 회의적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이 꼭지라고 판단하고 매각을 타진하는 골프장들이 있는데,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수도 있지만 매각 후 현금화하는 것도 한발 빠른 판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위드 코로나’와 상관없이 가격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골프장을 레저업이 아닌 부동산업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매물을 내놨다가 거둬들이는 사례도 종종 나오고 있다.

지난해 파가니카와 오너스GC 등 굵직한 거래 자문을 맡은 심재훈 삼정KPMG 골프자문팀 상무는 “수도권 골프장을 보유하고자 하는 시장의 수요는 여전히 높다. ‘던지는 게 값이고 받는 게 값’이고 얘기한다” 며 “골프장은 부동산 자산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수익가치에 자산가치를 더해 평가하는 현재의 추세가 이어질 것이다. 오피스텔·호텔 등 일반 부동산보다 유지비도 낮아 M&A 시장에서 골프장 매물의 밸류에이션은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창민 큐캐피탈 전무는 “골프장 시세가 급등했다고 생각해 정리하려던 기업들도 현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매물 출회를 거두고 있다. 급히 팔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세가 얼마나 상승할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신규골프장 진입장벽이 높은 국내 특성상 펀드나 기업이 골프장을 짓기보다 기존 골프장을 인수하는게 유리하다. 때문에 골프장의 가치가 쉽게 하락하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다만 회원권 가격은 물론 골프장 가격도 급등해 거래시장은 다소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2010년 이후 최고 시세를 찍은 회원권 시장의 맹렬한 상승세가 최근 주춤하지만, 수요가 누적된 고가회원권은 여전히 인기가 높다.

골프업계의 장기적인 전망은 다소 유동적이다.

‘위드 코로나’가 자리잡게 되면 해외여행과 골프투어 등이 늘어나면서 국내 골프장에 몰리던 골퍼들이 분산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제주도, 지방에서부터 ‘내장객 감소→그린피 인하’가 진행되면 치솟기만 하던 전국의 골프장 그린피도 어느 정도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골프인구의 노령화가 진행되는 것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젊은 층의 골프인구가 늘었지만 실제 라운드를 연 10회 이상 나가는 충성도 높은 골퍼는 30대 중반 이후부터 60대 연령층이다.

사상 유례없는 코로나 특수로 호황을 누린 골프업계가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골퍼들과 골프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성진·조범자 기자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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