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라이프칼럼] 아버지는 아들이 돼 온다
뉴스종합| 2021-11-16 11:31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눈앞에 다가왔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경험상 선뜻 공감되지 않는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온 친구들이 사회적으로 더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경우를 훨씬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아버지는 학원 영어 강사이셨다. 요즘 말하는 ‘1타강사’는 아니었기에 살림살이 형편이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밥 걱정없이 공부시켜주신 아버지가 지금도 고맙기만 하다.

아버지는 재수생을 담당하셨는데 이른 새벽에 나가셔서 늦은 밤에 귀가하시는 고단한 일정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숨 가쁘게 바쁜 일정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대학입시가 끝난 날 저녁이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진학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모여서 이른바 ‘전국대학 배치표’라는 것을 작성한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점에서 가격이 결정되듯이 전국의 모든 수험생과 대학이 짝을 짓는데, 당시로서는 학원가에서 만드는 배치표가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었다. 한쪽 벽면을 채울 정도로 큰 종이에 1점 단위로 전국의 모든 대학, 모든 학과의 순위가 인쇄돼 있다. 그 피라미드의 한 계단이라도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바친 열정과 희생은 그야말로 수험생마다 한 권씩의 대하소설이 된다.

늦둥이 막내가 고3이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공부하는 모습에 만족하며 성적은 묻지 않고 있다.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려면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라는데 최소한 하나는 확실하게 준비해 준 것 같다. 일부러 무관심하려 하지 않아도 아들은 왠지 딸하고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곰살갑게 대해주는 것은 기대도 않지만 모처럼 말이라도 붙여보려 해도 대화가 단답형으로 끝난다. 그나마 얼굴이라도 제대로 쳐다보고 싶지만 뭐가 그리 바쁜지 눈앞에서 휙 지나쳐 버린다. 엄마하고는 간혹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이거나 목소리가 들리는데, 아들에게 아버지는 낯선 존재인가보다. 다른 친구들에게 하소연해보니 그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 해결책 없이 동병상련만 느꼈다.

처음에는 섭섭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필자가 바로 그랬다.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지에게 따뜻한 감사의 인사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퇴근 후 마시는 술 한잔이 하루의 피로를 녹이고, 새로운 내일을 시작하는 묘약이라는 것을 몰랐다. 취해서 비틀거리며 귀가하시는 모습이 마냥 싫기만 했다. 지금은 그렇게 취해서라도 집에 돌아오시면 좋겠다. 이처럼 아버지는 아들의 모습으로 지난 날의 불효를 깨닫게 해주신다. 무뚝뚝한 아버지의 말과 행동 속에 얼마나 많은 관심과 따뜻함이 담겨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고 있으니 후회막급이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 아들, 딸들이 건강하게 수능을 잘 치르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알아주었으면 한다. 비록 말하지 못할지라도 그대들의 아버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식들이 건강하게 시험을 잘 마치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수없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자식 팔뚝에 난 조그만 상처를 치료하는 데 필요하다면 기꺼이 한쪽 팔이라도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그대 역시 부모가 되어 보면 알 것이다.

시험이 끝나면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는 말을 인터넷으로라도 꼭 한 번 검색해보기 바란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

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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