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안동이 고려의 수도였다?…27가지 듣는 안동
라이프| 2021-12-09 09:20

지난 1999년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안동 하외마을을 방문, 생일상까지 받고 원더풀을 외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여왕의 일거수 일투족은 주목을 받았는데, 정작 안동사람들은 그러려니 했다. 여왕이 안동에 올 줄 알았기 때문에 그닥 놀랄 일이 아니었다. 여왕이 한국을 방문한 건 갓 쓴 여자(安)가 동쪽(東)을 찾아온 셈이니 당연히 안동(安東)을 오게 됐다는 우스개소리다.

안동은 흔히 정신문화의 뿌리, 선비의 도시로 불린다. 유림의 본거지일 뿐 아니라 전통생활문화가 잘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야기 거리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여행작가 노시훈은 ‘듣는 안동’(어문학사)에서 안동이 품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 안동사람도 잘 모르는 27가지 이야기로 안동을 소개한다.

안동이 고려왕조 개국의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은 잘 모를 수 있다. 안동의 삼태사로 불리는 김선평, 권행, 장정필은 고창전투에서 고려편에 서 왕건을 도왔다. 견훤을 상대로 고전하던 왕건은 이 전투를 계기로 결정적 승기를 잡고, 후삼국을 통일하게 됐으니 안동의 힘이다.

그런데 안동김씨가 세도정치로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건 따져봐야 한다. 열한 살 순조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온갖 비리를 저지른 안동 김씨 일족은 이미 200년 전 안동을 떠나 한양, 장의동(지금 통의동) 근처에 자리를 잡았던 터라 안동 토박이들은 이들을 ‘장동 김씨’라 부른다. 오히려 장동의 김씨들은 노론, 오리지널 안동의 김씨들은 남인으로 적대관계였으니 억울하다는 얘기다.

작가가 마을 마을을 발로 뛰면서 찾아낸 이야기들은 자료에 갇힌 이야기와 달리 생생하고 재미있다.

작가는 안동이 ‘천년병화불입지지’(千年兵禍不入之地)라는 탁월함으로 한 때 나라의 수도였던 적이 있다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비롯, 영주와 안동이 벌이는 ‘퇴계 소유권(?)’ 분쟁을 ‘범안동권’ 시각으로 넉넉하게 바라보는가 하면, ‘합시다 러브’로 유명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무대인 만휴정 등 역사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또한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안동갈비골목만의 특징, 안동 호수를 가로지르는 안동의 대표적 걷기 코스인 선비순례길, 안동역 구내 연리지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벚나무와 트로트 ‘안동역에서’의 역주행 등 여행자를 홀리는 가이드처럼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펼쳐간다.

그런데 왜 ‘듣는 안동’일까. 안동은 지정문화재가 300여 점에 달할 정도로 박물관 도시 경주와 맞먹는다. 품고 있는 이야기, 뿌리와 원형을 모르면 도산서원도 그냥 옛집에 불과하기 때문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듣는 안동/노시훈 지음/어문학사

meel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