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져
도롱이못·송중기·콧등치기·떼돈..정선·태백 다짐 여행
라이프| 2021-12-14 07:12
동해와 평행으로 달리던 백두대간 중 큰 가닥 하나를 지리산 쪽으로 분기하는 지점, 태백산 매봉 바람의 언덕. 크리스마스 무렵, 북위 37도인 이곳에 겨울바람이 불면, 북위 66도의 핀란드 산타마을 라플란드와 비슷한 체감온도가 된다. 그래서 태백산 매봉 일대는 겨울 걸크러쉬·산사나이들의 도전 욕구를 자극한다.
하늘길은 광부들이 캔 석탄을 운반하던 운탄고도와 남편과 아들의 무사귀환을 빌던 도롱이연못을 끼고 있다.

우리 국토의 가장 굵은 뼈대, 백두대간은 남쪽으로 나아가다 정선-태백 접경인 매봉산(1303m) 일대에서 남서쪽 굵직한 능선 갈림길을 빚어낸다.

영남알프스로 직진할까, 지리산으로 갈까, 한참을 주저한 듯, 정선-태백에 평균해발 1000m가 넘는 거대 고원을 만든다. 고원 크기는 제주도 보다 약간 작다.

북위 37도라 경기 평택 보다 남쪽인데도 10월과 4월에 눈이 내리고, 삼팔선 넘어 북위 39도 인근 고성-통천 만큼 춥다.

▶약속의 땅= 탄광촌 애환을 그린 2008년 드라마 ‘에덴의 동쪽’의 촬영한 추전역은 해발 855m 지점에 있다.

드라마 에덴의동쪽 추전역 장면

겨울엔 이한치한(以寒治寒)의 도전의식을 자극하고, 여름엔 시원한 이 고을은 40~50년전 ‘약속의 땅’이었다. 동명의 드라마(1982년)도 있었다.

석유 없는 우리나라 산업을 돌게했던 유일한 에너지, 석탄의 메카였고, 목숨을 건 조업이었지만 그만큼 월급 봉투가 두둑해, 한때 실의에 잠겼던 전국의 이주민들이 삶의 희망을 찾던 탄광촌이었다. 초년병 광부 월급은 초등학교 교감 보다 많았다고 한다.

태백-정선을 잇는 태백산(1567m) 자락과 하이원이 있는 백운산(1426m) 고원 일대엔 연탄을 운반하던 길이 많았다. 운탄(運炭)이다. 운탄 풍경은 이제 사라졌지만, 폐광지의 희망이 되라고 만들어놓은 강원랜드 하이원이 철마다 새로운 빛깔을 품는 ‘하늘길’로 단장했다.

▶초겨울 건강트레킹= 정선-태백엔 겨울에 도전할 곳이 많다. 겨울엔 가파른 산행 보다는 고원트래킹이 안전한데, ▷하늘길 ▷운탄고도 남쪽의 함백산 ▷겨울에도 멋진 민둥산 ▷영화 ‘엽기적인 그녀’ 촬영지 새비재(타임캡슐공원) ▷매봉산 바람의 언덕과 고랭지 귀네미마을 ▷검룡소~순직산업전사 위령탑 바람부리길 탐방이 겨울트레킹의 묘미를 선사한다.

하늘길 코스는 10여개로 15분짜리에서 3시간짜리까지 있다. 하이원 뒷산 둘레길은 가장 긴데 ‘운탄고도’를 품고 있다. 1962년 닦은 이 길은 석탄 실은 대형 트럭이 해발 1100m가 넘는 산길을 따라 함백역까지 운반하기 위한 것이다. 하이원리조트가 매년 숲 해설가와 함께 운영하던 트레킹길은 안전한 2.4㎞ 구간이다.

한국관광개발연구원의 K아트 ‘가락’ 지구촌 송출영상을 촬영한 도롱이연못
도롱이연못

▶하늘길 도롱이연못의 애환= 운탄고도를 걷다보면 탄광갱도가 무너지면서 생긴 ‘도롱이 연못’을 만난다. 매일 기도, 사투, 걱정, 안도, 반가움이 교차되던 곳이었다. 광부의 전업주부 아내들은 이 연못에서 도롱뇽을 보며 막장 조업하던 남편들의 무사귀가를 기원했다. 도롱뇽이 살아있으면 광부들도 살아있다고 믿었다.

‘검은 장미’로 불리던 선탄 부서의 여성 광부들도 있었다. 우리 산업에 에너지를 불어넣은 여성 주역들의 노고도 잊어서는 안된다. 가슴 뜨거운 사연들 때문에 하늘길 겨울 트레킹은 따뜻하다. 또, 눈꽃이 아름답고, 고원 평탄길이기에 안전하다. 천촌만락이 발 아래 놓여 자신감도 커진다.

함백산 자락 정선 고한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태백이다. ‘에덴의동쪽’ 촬영지 추전역과 그 근처에 새로 개장한 ‘몽토랑 산양목장’이 먼저 반긴다. 날이 좋으면 방목형 목장의 전형을 구경할 수 있다.

목장 초지는 당연히 산양들의 공간인데, 불린 까만콩 처럼 생긴 배설물이 군데군데 한옴큼씩 놓여있는 것도 정겹다. 산양유는 사람의 모유와 가장 흡사한 구조를 가져 소화와 흡수가 빠르다고 한다. 산양과 함께 귀여운 아기돼지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부르면 강아지처럼 달려온다.

백두대간 능선 1200고지의 귀네미마을 고랭지배추는 최고급품이다.
국가지질공원 구문소의 가을

▶광부 아리랑=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을 지나 통리고개를 넘으면, 왼쪽으로 오로라파크와 통리역, 직진 방향으로 탄탄파크, 오른쪽으론 백산과 쇠바위(鐵巖:철암), 옛 장성읍 철암탄광역사촌, 고-중-신생대 통합 지질유산 구문소를 차례로 만난다.

옛 황지읍 통리고개는 태백-정선 탄전지대의 초입으로, 당시 속요 ‘광부아리랑’에 나온다. “황지-장성 사는 사람 얼굴 옷이 다 검네/ 통리고개 송애재는 자물쇠 고개인가/ 돈 벌러 들어왔다가 오도가도 못하네” 지금은 박물관 모습을 한 철암탄광역사촌에서 이 가사문학 아리랑을 읽노라면 눈물이 핑 돈다.

폐광이 되자 통리고개 자물쇠가 풀린다. 인구 이동을 보면, 광부 가족 중 상당수가 안산, 시화, 원주 공단으로 이주했다. 세월호 희생자 중엔 할아버지가 이곳 광부였던 아이도 있었다.

철암탄광역사촌에 있던 채탄장갑. 빨아도 검다

통리에서 송중기를 만난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 통리탄탄파크는 지난 7월 공식오픈했다. 한보탄광 폐광부지와 폐갱도에 IT콘텐츠기술을 접목해 독특한 동굴 디지털콘텐츠를 구현했다. 2개의 터널형 전시 공간 ‘기억을 품은 길’과 ‘빛을 찾는 길’이 있다. 광부들의 삶과 석탄을 주제로 표현한 디지털 아트, 구문소의 용궁 설화를 모티브로 한 라이브스케치, 여섯 대륙의 대표 동물들을 만나는 증강현실(AR)체험 포토존, 수호천사가 되어 태백을 구하는 건슬레이어즈 등 체험을 즐긴다.

협괘철로와 무너진 중동 건설현장, 헬기, 탱크, 야전병원, 오프로드 군용차 등이 그대로 있어, 입장객은 송중기의 동료 연기자가 된다.

태백통리 탄탄파크
탄탄파크 채굴지점 미디어아트

▶나전역 감성 카페= 여기서 2㎞ 떨어진 오로라파크는 통리역에 조성돼 있는데 탄탄파크와 한 쌍을 이룬다. 북위 37도이지만 강풍이 동반하면 체감기온이 북위 66도의 핀란드 라플란드 산타마을에 버금가기에, ‘오로라’라는 공원 이름이 얼추 어울린다.

이제 아리랑의 정선 중심부로 가보자. 세상 어디서도 제맛을 느끼기 힘든 정선음식의 향연이 정선아리랑시장에서 펼쳐진다. 곤드레밥에 넣는 곤드레 나물은 정선 산이라야 제맛이 난다. 나물 이름은 원래 고려엉겅퀴인데, 고원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월급날 광부의 술 취한 모습 같다고 해서 곤드레다.

콧등치기 막국수는 정선 메밀면이 굵고 투박해 후루룩 면치기를 하면 반드시 콧등을 새차게 때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업 마친 광부들의 목을 씻어준 물닭갈비도 별미다. ‘식객’ 촬영지 운암정은 하이원리조트내에 있다. 조선의 정통다과로 유명하다.

정선아리랑시장의 콧등치기 막국수
‘식객’ 촬영지 운암정은 전통다과로도 유명하다

정선 필수템으로 간이역 나전역크림라떼도 있다. 분홍색 슬레이트 지붕을 가진 옛 대합실 카페에서, 서태지의 CF 촬영장소를 내다보며, 고-중-신생대 지층처럼 담아온 라떼를 마신다. 위로부터 곤드레향 크림, 커피맛, 흑임자젤라또가 차례로 혀끝에 닿는다.

▶범띠해 희망 찾기= 최근 여행이 시작되면서 한국을 방문한 싱가포르 여행객들은 자국에선 볼수 없던 하이원 스키, 나전역 라떼, 곤드레 나물밥을 차례로 체험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떼돈’은 탄광에서만 벌었던 게 아니다. ‘떼돈’이란 말은, 조선시대 정선 아우라지에서 뗏목으로 금강송을 싣고 출발해 한양에 갔다주면 시골집 한 채 마련할 정도의 돈을 받았다는데서 유래됐다.

백두대간 호랑이 등뼈, 정선-태백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희망을 일궜다. 그리고 그 후예들은 정선 하늘길 운탄고도를 걸으며 2022년 범띠해 ‘진짜 희망’을 그리고 있었다.

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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