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하다면, 예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문화 플러스-행동하는 예술가가 묻는다]
라이프| 2021-12-16 11:54
난민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작품을 발표한 아이 웨이웨이의 ‘구명조끼 뱀(Life Vest Snake)’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2.5m의 붉고 푸른 거대한 뱀이 전시장의 복도 천장을 가로질렀다. 그리스 남동부 레스보스섬에서 난민들이 벗어두고 간 구명조끼 140벌을 연결해 만든 ‘구명조끼 뱀’(2019). 조끼의 주인은 사라졌지만, 작가는 그들이 남긴 흔적을 놓치지 않았다. 뱀은 “우리가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실체”를 의미한다. 거대한 뱀의 꼬리를 따라 이동하면 ‘빨래방’(2016)을 만나게 된다. 열두 개의 옷걸이엔 방금 세탁한듯 깔끔한 옷들이 종류별로 걸렸다.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에 위치한 이도메니 난민캠프에서 수집한 옷과 신발이다. 주인을 찾을 수 없는 옷가지의 가지런함은 마음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나의 예술이 사람들의 고통이나 슬픔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예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아이 웨이웨이(艾未未·64) ‘행동하는 예술가’다.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반(反) 체제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엔 지나온 역사와 지금 이 시대가 담겼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시민으로서 추구하는 인간의 존엄이 실렸다. 그는 한국에서의 개인전 ‘아이 웨이웨이 : 인간미래’(2022년 4월 1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를 앞두고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나 자신이 바로 국제 이슈”이며 “내가 처한 상황이 세계적 문제의 일부”라고 말했다.

국내 첫 개인전에선 아이 웨이웨이와 회화부터 설치, 사진, 오브제 등 대표작 120여점이 걸린다. 화가이면서 조각가이고, 설치미술가이자 사진작가이며, 영화감독이자 사회운동가인 아이 웨이웨이의 삶이 펼쳐진다. 작품의 규모도 방대하다. 지난달 홍콩에 개관한 M+미술관의 전시 대상에서 배제된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부터 최신작 ‘로힝야’(2021)에 이른다.

아이 웨이웨이의’ 원근법 연구, 1995-2011(Study of Perspective)’은 권력을 조롱하고 그것에 저항한 작가의 대표작이다.[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제공]

작가의 여정을 함께 걷는 일에는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의 예술세계 화두인 ‘인간’과 예술활동이 추구하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걸음엔 ‘외면하지 않을 용기’가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아이 웨이웨이는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강조하며 미래 세대가 그런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 웨이웨이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만든 것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들이다. ‘휴머니즘’, ‘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한 저항’을 표현,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불편한 작가가 됐다.

1995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인 ‘원근법 연구’는 아이 웨이웨이를 알린 대표작이다. 중국의 무구한 역사를 굽어본 톈안먼 광장부터 미국 백악관, 파리 에펠탑을 향해 호쾌하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 사진 시리즈(‘원근법 연구, 1995-2011’)는 살아있는 권력을 조롱한다. 그는 “중국 정부는 보편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중국은 1949년 신정부 수립 이래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만을 허용했고, 대부분의 경우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보통 표현의 자유는 좁은 의미로 어떤 정치환경이나 정치체제 안에서 개인이 실제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라 여겨지지만 더 중요하게는 생명 본연의 속성이에요.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생명의 중요한 특성, 인간으로서의 특성은 더이상 없어요. 표현의 자유는 인권의 기본적 가치이며, 어떤 권력이나 정치·종교적 명분으로도 침해될 수 없습니다.”

중국 출신의 반(反) 체제 미술가인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엔 지나온 역사와 지금 이 시대가 담겼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시민으로서 추구하는 인간의 존엄이 실어 행동하고, 저항하고, 표현한다.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표현의 자유’를 갈구하는 아이 웨이웨이의 삶은 늘 고단했다. 문화혁명기에 아버지는 우파로 몰리며 농촌으로 쫓겨갔다. 저항적, 체제 비판적 작업을 이어가는 그는 고국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의 눈 밖에 난 후론 체포와 가택연금, 구속의 나날을 보냈다. 2011년엔 탈세 혐의로 구금되고 여권도 빼앗겼다. 4년 만에 여권을 돌려받은 그는 2015년부터 유럽에 머물고 있다. 스스로를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포르투갈에 머물고 있다.

아이 웨이웨이의 살아있는 기록들은 그의 고국을 불편하게 했다. 2008년 쓰촨대지진 당시 시민조사단을 만들어 피해자 가족들을 인터뷰하고 죽은 아이들의 이름과 숫자를 집계해 블로그에 올렸다. 블로그는 2009년 5월 폐쇄당했다. 같은 해 8월 환경운동가 탄줘런의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청두로 달려가 두 명의 경찰에게 연행되는 중에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셀카’로 작품(‘조명’)을 남겼다. 지난해엔 코로나19 발생지인 우한(武漢)의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 ‘코로네이션’(Coronation)을 완성했다. 작품은 유럽, 미국의 주요 영화제에 상영할 계획이었지만 거절됐다. 그는 “이 사건은 현재 중국의 국가 위상이 유럽과 미국의 정치적 환경과 중국 시장에 대한 그들의 요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중국은 유럽, 미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모든 면에서 그 국가들의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1.‘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파카인 동물(The Animal that Looks Like a Llama but is Really an Alpaca)’은 표현의 자유와 감시 당하는 현대인의 삶을 주제로 했다.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제공]

아이 웨이웨이의 표현방식과 전달 매체는 한계가 없다. 다양한 SNS 활동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알리고 국제사회에 공유한다.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만 해도 63만명이다. 중국 공안에게 감시당하는 일상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생중계한 대담한 예술(‘웨이웨이캠’) 작업은 24시간 동안 무려 5200만의 방문횟수를 기록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이러한 활동에 대해 “예술은 문제와 모순으로부터 나오고 이것들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은 미디어의 활용”이라며 “정치 환경이 엄혹한 상황에서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면 작품이란 것이 존재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아이 웨이웨이가 알려진 것은 작품을 통한 그의 메시지이지만, 재료의 다양성이나 표현방식 면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이 많다. “전통에서 현대까지 표현방식이 다양한 광폭의 작가이자, 미술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늘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작가”(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는 레고 블록으로 대형 십이지신 두상을 만들었고, 3.1m 높이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은 전통의 도자 방식에 현재의 메시지를 그림으로 그려 넣었다. 이수정 학예 연구사는 “전통의 현대화를 탁월하게 구현한 작품”이라고 했다.

중국 남부 산악지대에서 수집한 은행나무, 녹나무, 삼나무 등 고목의 조각들을 짜맞춰 6m 높이로 세워진 한 그루의 ‘나무’는 “서로 다른 개인이 하나의 사회로 어우러지는 모습”과 닮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아이 웨이웨이 전시의 시작과 끝은 미술관 마당의 ‘나무’(2015)로 이어진다. 중국 남부 산악지대에서 수집한 은행나무, 녹나무, 삼나무 등 고목의 조각들을 짜맞춰 6m 높이 한 그루의 나무로 만들었다. 덧대고 이어진 고목의 줄기들은 “서로 다른 개인이 하나의 사회로 어우러지는 모습”과 닮았다. “서로 같지 않아도 어울릴 수 있는 사회가 아이 웨이웨이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사회의 모습”(이수정 학예연구사)이다.

표현하고, 저항하며, 기억하는 예술가이지만, 아이 웨이웨이는 “예술이나 예술가에겐 정해진 역할은 없다”고 말했다. “만약 역할이란 것이 있다면 인류의 환경이나 인류가 처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생기는 것이겠죠. 그래서 예술의 역할은 반드시 변합니다. 인류가 직면한 정신적·사회적 대위기 상황에서 예술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건 송장이나 마찬가지예요.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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