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윤희의 현장에서] 녹취록과 굿판, 그리고 대선판
뉴스종합| 2022-01-19 11:23

연초가 되면 새해 운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진다. 일간지는 올 한 해 띠별 운세 소개에 1월 1일자 지면을 할애하는가 하면, 인터넷에서는 ‘신년운세’관련 검색량이 급증한다. 얼마 전 MBC ‘나혼자 산다’에서는 삼재를 맞은 기안84가 불교용품점에서 부적을 사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운세를 믿지 않더라도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 가진 욕망일 것이다. ‘대통령은 누가 될 것인가’ 역시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미래 중 하나다. ‘누군가의 당선을 맞혔다’는 것이 유명 무속인, 역술인 등의 신통력을 가늠하는 일종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역대 대선에서 무속과 관련된 얘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누구는 조상 묘를 이장해 당선됐다거나 또 반대로 누구는 묘를 잘못 써 떨어졌다고들 한다. 지금도 여의도에서는 선거캠프의 위치를 두고 ‘대통령을 배출한 명당’이니 하는 얘기를 한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유명한 영화 대사도 있지 않나.

그럼에도 현재의 대선판은 이례적이다. 대통령 후보와 후보의 배우자를 둘러싼 무속 논란이 지금처럼 대선 정국 전면에 떠오른 적은 없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TV 예능 프로인지, 정치뉴스인지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무속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건진법사’로 불리는 무속인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거대책본부의 운영 전반에 개입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마침 보도 전날 공개된 윤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녹취록에 나온 “나는 영적인 사람이라 도사들과 삶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발언까지 맞물리며 상황은 점입가경이 됐다.

윤 후보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 해명대로 ‘매머드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과정에서 무속인이 포함됐을 뿐, 고문으로 임명한 적도 없고 운영 전반에 개입하거나 후보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수 있다. 문제는 빌미를 준 것 자체다. 그렇지 않아도 윤 후보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 ‘손바닥 왕(王)자’와 ‘천공스승’ 문제로 여러 차례 곤욕을 치렀다. 윤 후보가 무속인이 드나든 것으로 지목된 네트워크본부를 즉각 해체했지만 의혹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다. 여권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불린 최순실 씨의 ‘오방색’을 연상시킨다는 비판마저 쏟아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라고 논란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이 후보 선대위에도 역술인협회장이 이름을 올린 것이 전날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19대 대선 당시 무속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했으며, 18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시민캠프가 ‘당선기원굿’까지 지냈다고 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말 그대로 ‘난리굿’이다.

녹취록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이쪽에서 ‘김건희 7시간 통화’ 녹취록을 터뜨리자 저쪽에서는 ‘이재명 욕설 160분’ 파일을 공개했다. 대선판을 점철한 무차별적 폭로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무속 논란에 이르러서는 헛웃음마저 나온다. 정책공약과 미래비전을 비교할 기회는 사라지고, 온갖 가십성 무속 논란과 녹취록 공방이 뉴스를 장악했다. 유권자는 당혹스럽다.

yun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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