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돌발변수 떠오른 反中정서에
여야 정치권 ‘비판 메시지’ 쏟아내
일각 “책임있고 냉철한 접근 필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8일 서울 강서구 방신전통시장 고객지원센터 회의실에서 열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힘이 되겠습니다’ 전국자영업자·소상공인 단체 대표단 긴급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정경 분리는 현대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외교의 원칙이 돼 왔다. ‘자유 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간 교역에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 역시 정치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다. 민족·국가간 배타적 이익 추구 경쟁이 ‘인류 화합의 대제전’이라는 올림픽의 이상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국제적인 합의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이 ‘중화사상’이라 불리는 중국의 패권주의로 물들면서 국제적으로 거센 비난에 휩싸였다. 특히 쇼트트랙 경기 오심 논란이 불공정 논란으로 번지면서 국내 ‘반중(反中)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불과 28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도 돌발변수로 떠올랐다. 대선 캐스팅 보터로 꼽히는 20~30대 청년층을 중심으로 중국을 향한 분노가 거세져 대선 민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여야 정치권은 반중 정서를 감안하며 강한 어조의 비판을 쏟아내는 모습이다.
▶거센 반중정서 올라탄 정치권=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반중정서가 가져올 대선 영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중국에 대한 비판적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선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보다 확연히 강한 어조로 메시지를 쏟아내며 여권에 씌워진 ‘친중 프레임’ 걷어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윤 후보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공약을 두고 “반중 정서를 정치에 이용한다”고 맹폭하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먼저 이 후보는 편파판정 논란이 불거진 지난 7일 저녁 11시에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SNS 메시지를 내놨다. 즉각 대응해야 한다는 캠프 판단에 따라 여야 대선후보들 중 가장 빠르게 비판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불공정에 대한 분노로 잠 못 이루는 밤”이라고 썼고, 박주민 의원은 “중국 운동회냐. 부끄럽지 않느냐”고 직격했다.
이 후보는 다음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올림픽이 자칫 중국 동네잔치로 변질되고 있다는 아쉬움이 든다. 중국 당국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직격했고, 이날 진행된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한국 해역 내 불법 중국 어선 문제에 대해 “불법 영해 침범인데 그런 건 격침해버려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민주당 보다 대중 강경 노선을 보여온 국민의힘도 다시 한번 목소리를 냈다. 윤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중국의 더티판정으로 무너져 내렸다.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잘못된 판정”고 지적했고, SNS에선 “고구려와 발해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라고 언급했다. 반중 정서가 고조돼서 선거에 나쁠 게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해 12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간담회에서 “한국 국민들 특히 청년들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한다”며 반중 정서에 적극 공감을 표한 바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역시 지난달 31일 이재명 후보의 ‘고속도로 졸음쉼터 태양광 그늘막 설치’ 공약 발표 SNS에 “지금 이 시점에 중국 업체를 위한 공약이 꼭 필요하냐”는 댓글을 달며 ‘친중 프레임’을 재차 씌워놓은 바 있다.
이 대표는 9일 YTN라디오에서는 오히려 이재명 후보의 ‘중국 어선 격침’ 인터뷰 발언에 대해 “이 후보가 중국과의 올림픽 분쟁 때문인지 ‘중국 어선 격침시키겠다’는 말을 했는데 조금 걱정된다. 중국 눈치 때문에 사드 배치는 안 된다더니, 오히려 중국 어선 격침하자는 게 전쟁하자는 이야기”라고 꼬집기도 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8일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꿉니다’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과학기술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
▶2030세대, 왜 중국에 더 격분하나 = 실제 2030세대는 이번 올림픽의 쇼트트랙 편파판정 문제, 개막식에 등장한 한복 논란 등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강한 반중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2030세대가 불공정에 매우 민감한 특성을 갖고 있는데다 그동안 온라인 상에서 중국인들과 자주 부딪혀온 세대이기 때문에 ‘분노의 결’이 다르다고 분석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게임이나 K-팝 등 온라인을 통해 문화, 사회적 측면에서 중국인들과 전쟁을 벌여온 세대가 바로 2030”이라면서 “이들은 4050세대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중국을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엄 소장은 이들이 진보정부에 대해 ‘중국과 북한에 저자세로 일관해왔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보니 이번 올림픽을 두고 분노가 더 크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를 분리해야 하는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며 국제사회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만큼, 우리 정치권이 냉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포츠와 문화 분야에 대한 중국의 잘못은 엄중하게 지적하고 외교적 대응을 해야하지만, 책임있는 대선후보라면 장기적 시각에서 냉철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의 동북공정 시도 등 부당한 문제에 대해선 단호한 입장 표명을 해야겠지만 지나친 반중 정서 편승이나 중국인에 대한 혐오 여론을 정치권이 동원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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